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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해상도시, 난마돌(Nan Madol)

제이스톤 2023. 1. 3. 20:30

 서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에서 가장 큰 폰페이(Pohnpei) 섬 남동부에는 템웬(Temwen)이라는 작은 산호섬이 있습니다. 12세기 무렵 이곳에 화산암을 쌓아 만든 92개의 인공섬 유적지가 바로 난마돌(Nan Madol)입니다. 이 섬들은 100개 가까운 운하로 연결되어 있어 “태평양의 베네치아”라는 수식어로 불리기도 합니다. 난마돌은 “사이의 공간”이라는 뜻으로 인공섬 사이의 작은 수로, 운하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난마돌 복원도
난마돌 복원도(https://www.worldhistory.org/image/12553/nan-madol-reconstructed/)

 발굴작업을 통해 기원전 200년경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폰페이 섬에는 1~2세기부터 사람이 거주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을 통해 난마돌이 대략 11~12세기 무렵부터 축조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세기 동안 폰페이 섬의 화산암을 채취해 뗏목으로 운반하여 인공섬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많은 돌을 어떻게 옮길 수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게다가 멀쩡한 섬을 두고 산호초 위에 인공섬을 만든 이유도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작은 섬에서 이렇게 거대한 석조 유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섬 자체에 상주하는 인구가 상당히 많았어야 할 것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폰페이 섬은 인구 20만명이 거주하는 도시였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 폰페이 섬의 인구는 25,000명, 난마돌의 인구는 1,000명으로 추측될 뿐입니다. 이는 인공섬을 만들기에는 조금 부족한 수치입니다.

 게다가 강력한 왕권을 가진 정치체계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난마돌은 위치와 구조상 식량과 식수의 자체수급이 불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폰페이 섬에서 이를 공급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또한 강력한 왕권을 가진 세력이 존재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난마돌 유적지 Nan Madol Ruins
난마돌 유적지

 실제로 고고학적 흔적을 통해 1~2세기에 이곳이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였다는 가설이 제기되었습니다. 당시 사우델레우르(Saudeleur) 왕조가 번성했다가 1628년에 정착민 무리의 지도자로 추정되는 이소켈레켈(Isokelekel)에 의해 멸망하면서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권력이 약해지면서 생필품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도시는 서서히 빛을 잃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지 않던 이곳은 폐허로 방치되다가 1899년 독일이 이 섬을 스페인으로부터 구입한 후 독일령 뉴기니에 편입하였습니다. 이후 이 섬을 점령한 일본, 미국의 학자들이 제한적이나마 발굴 및 연구 조사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고고학적 사실들이 밝혀졌습니다.

난마돌 유적지 지도(Wikimedia Commons)

 난마돌의 넓이는 18㎢에 달하는데 서로 교차하는 운하를 파내고 인공적으로 만든 여러 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섬들은 서로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져 기하학적인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기둥처럼 길게 자른 현무암 석재를 수직으로 교차하며 쌓아 올렸습니다. 사용된 전체 석재의 양을 75만톤 정도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산호섬 위에 있어 수시로 바닷물에 잠기는데 무릎부터 허리 수준으로 해수면이 형성됩니다. 유적 바깥쪽으로 크고 너른 돌을 쌓아 최대 15m 높이로 쌓았기 때문에 유적 안의 바다는 대체적으로 잔잔한 편입니다.

난마돌 유적지 현무암
난마돌 유적지

 유적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북동쪽 마돌 포웨(Powe) 지역에 58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매장터와 높이 7.5m의 난도와스(Nan Dowas)라는 왕족의 무덤입니다.

 역사적으로 미크로네시아 일대에는 문자가 전파되지 않아 난마돌 유족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시 왕조는 사라졌지만 이곳 원주민들에게는 구전으로 전해져 왔고 그들은 지금도 이곳을 신성한 곳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구전설화에 의하면 난마돌의 현무암이 마법의 힘으로 채석장에서 운반되었다고 합니다. 마법사 형제가 농업의 신을 섬기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요, 산호초 위에 세워져 바닷물이 들이차는 인공섬에서는 농사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렇기에 더욱 농사와 식량에 대한 갈망이 컸던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호사가들은 이 곳이 사라진 뮤 대륙의 일부라거나 뮤 대륙의 사람들이 흘러들어와 세운 도시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참고자료 : 잃어버린 문명 대백과(2015년, 학연교육출판 편저, 고정아 역, 루덴스미디어, p192)
https://namu.wiki/w/난마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