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능가했던 권력자, 존 에드거 후버 FBI국장
미국 대통령이 5번 바뀔 동안 FBI 국장은 단 한명이었습니다. 존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는 초대 FBI 국장으로 임명된 후 대통령들의 약점을 이용해 37년간 자리를 지켰습니다. FBI의 전신인 수사국의 국장으로 임명된 1924년부터 계산하면 48년간입니다.
후버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자 1947년 트루먼 대통령은 직속 정보기관인 CIA를 창설하고 모든 해외 첩보 업무를 CIA로 이관하였습니다. 하지만 후버는 트루먼이 부통령 시절 은행가들에게 거액의 불법 정치 자금을 제공받았던 증거를 확보하고 이를 빌미로 트루먼을 협박했습니다. 결국 트루먼은 CIA로 해외 첩보 업무를 이관한다는 결정을 번복했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후버를 견제하려던 그는 친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고 FBI의 권한 상당부분을 법무부로 이관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후버는 케네디 가문이 오랫동안 마피아의 뒤를 봐주고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내 케네디를 협박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역대 대통령의 스캔들과 약점을 이용해 막대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습니다.
이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은 어쩌면 미국 정치권력자들이 자초한 일이었습니다. 독일 나치제국이 위세를 떨치던 19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 사회에서 나치즘을 추종하는 무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FBI에 막강한 권력을 부여했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5월, 후버는 미국 내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합법적인 도청을 허락받았습니다. 후버는 이 권한을 이용하여 백악관까지 도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후버 국장은 대통령까지 포함한 모든 미국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삼아 미행이나 도청 등의 정보활동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자신만의 비밀 파일에 대통령들의 비밀을 기록한 후버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를 빌미로 그들을 협박했던 것입니다.
후버 국장은 1972년 5월 2일, 미국 워싱턴에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그날 후버의 자택에는 그의 시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온 집을 뒤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후버의 집에서 무언가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내린 사람은 미국의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었습니다. 1969년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에게 후버는 늘 골칫거리였습니다. ‘FBI의 살아 있는 신화’로 불리던 후버는 대통령을 능가하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후버는 FBI가 맡은 사건 대부분을 닉슨에게 보고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했습니다. 닉슨의 측근들은 일찍이 후버를 해임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이에 동조한 닉슨은 후버를 뒷조사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닉슨이 자신의 뒷조사를 지시한 사실을 알게 된 후버는 한 장의 사진을 건넸습니다. 사진 속 이물은 마리아나 리우. 닉슨은 부통령 시절 그녀를 홍콩에서 처음 만났고 이후 은밀한 만남을 지속해 왔습니다. 유부남이었던 닉슨의 외도 사실이 알려지면 그의 정치 인생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결국 닉슨은 후버를 해임하지 못하고 그가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때문에 후버의 사망 소식을 접한 닉슨은 자신의 약점이 담겨 있는 비밀 파일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닉슨은 후버의 비밀 파일을 찾지 못했습니다.
2005년 프랑스에서 한 권의 책이 출간되며 후버의 비밀 파일이 다시금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FBI의 2인자이면서 후버의 동성 연인이었던 클라이드 톨슨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에드거의 악담’이라는 책이었습니다. 톨슨은 생전 후버의 비밀 파일이 존재한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후버의 비밀문서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후버가 죽자 마침내 안도의 숨을 쉬게 된 미국 정치인들은 제2의 후버가 탄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FBI국장의 임기를 제한하는데 합의하였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FBI 국장의 임기를 최대 10년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 서프라이즈 인물편(2016년,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제작팀 저, MBC C&I, p129-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