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인물편

마틴 루터 킹 암살사건의 용의자들

제이스톤 2023. 2. 7. 20:30

 목사이자 반전 운동가, 흑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보스턴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앨라배마 주의 몽고메리 침례교회에 부임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시영 버스의 차별적인 좌석제에 대한 비폭력적 버스 보이콧 운동을 펼쳐 성공하였고 이를 계기로 전국적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Jr
마틴 루터 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로 시작하는 역사적인 연설이 있었던 1963년의 워싱턴 대행진을 비롯한 수많은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비폭력, 평화주의 방법으로 흑인들에게 불평등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6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가 흑인 환경 미화원들의 파업을 지원하는 연설을 하고자 미국 테네시 주 멤피스에 도착한 날은 1968년 4월 4일이었습니다. 성공리에 연설을 마친 다음 날, 그는 숙소인 로레인 모텔(Lorraine Motel)의 2층 발코니에서 날아온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흑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마틴이 사망하자 미국 전역의 63개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장례식에는 15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여할 정도로 그의 죽음은 미국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마틴 루터 킹 암살 직후
마틴 루터 킹 암살 직후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총을 수거해 남아 있는 지문과 범인과 마주친 유일한 목격자 찰스 스티븐스의 증언을 토대로 범인을 추적했습니다. 2개월 후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제임스 얼 레이(James Earl Ray)라는 남자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범행일체를 자백했고 99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레이는 자신은 희생양일 뿐이라며 자백을 번복하고 나섰습니다.

 1967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던 레이는 탈옥에 성공한 다음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라울이라는 사람을 만났다고 합니다. 라울은 돈을 건네며 총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건 당일 레이는 라울에게 총을 전달한 후 건물 밖에 세워둔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라울이 마틴을 저격했고 레이는 당시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제임스 얼 레이 James Earl Ray
제임스 얼 레이(출처 : Wikimedia Commons)

 실제 레이가 검거될 당시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있었습니다. (1) 당시 저격 장소로 알려진 여인숙 화장실에서 레이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2) 군 제대 이후 단 한번도 총을 잡아본 적이 없었던 레이가 60m가량 떨어진 곳에서 단 한발의 총알로 마틴을 암살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3) 당시 교도소를 탈출해 빈곤한 생활을 하던 레이가 암살 직후 무슨 돈으로 세계여행 내지는 도피를 했는지 의문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캐나다를 거쳐 영국, 포르투갈 그리고 벨기에로 가려던 중에 검거되었습니다. (4) 레이가 복역했던 교도소 관계자들은 레이가 인종차별적인 말을 한적도 없고 그리 정치적인 인물도 아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을 암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찰스 스티븐스(Charles Stephens)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이 당시 만취 상태였기에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당국은 스티븐스의 증언을 받아들였고, 찰스의 아내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되었습니다.

1963년의 워싱턴 대행진
1963년의 워싱턴 대행진

 한편 레이의 변호사였던 윌리엄 페퍼는 마틴을 암살한 배후는 따로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레이가 과연 진짜 암살범이냐 하는 의혹이 일기 시작하면서 음모론자들은 여러 용의자들을 지목하기 시작했습니다.

(1) FBI - 당시 FBI는 마틴을 요주의 인물로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흑인 폭동을 일으켜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FBI는 마틴을 흠집낼만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도청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결국 FBI는 마피아를 고용해 암살을 의뢰했고 그가 바로 라울이라는 주장입니다.

(2) CIA - 킹의 암살범은 CIA 요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멤피스 경찰로 위장한 CIA 요원이 마틴을 살해했고 레이는 그 죄를 대신 뒤집어쓴 희생양이라는 것입니다. 레이가 검거 당시 여러 개의 위조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이는 CIA 위조 전문가들이 만든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나돌았습니다.

암살 전날 로레인 모텔 발코니에서
암살 전날 로레인 모텔 발코니에서

(3) 멤피스 경찰 - 1968년 3월 멤피스에서는 흑인들의 폭력시위가 있었습니다. 4월에 다시 마틴이 멤피스로 온다는 소식에 멤피스 경찰은 물론 도시 전체가 마틴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현지 경찰이 직접 나서 그를 암살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암살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멤피스 경찰국장의 사무실에 군부요원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는 사실도 특이한 점입니다.

 당시 여러 단체들로부터 암살 위협에 시달리던 마틴은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건 당일 멤피스 경찰들은 마틴의 경호를 중단했습니다. 이는 멤피스 경찰들이 그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 KKK단 -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Ku Klux Klan)단은 흑인들에게 무자비한 테러를 가해 왔고 마틴은 흑인들에 대한 그들의 왜곡된 가치관을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KKK단이 미국 남부의 흑인들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마틴을 암살했다는 것입니다.

(5) 마틴의 측근들 - 그의 지지세력 중에는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반대하는 진보주의적인 성향의 측근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좀 더 과격한 방식으로 흑인 인권 운동을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선에 방해가 되는 마틴을 암살하게 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사건은 미국의 많은 암살사건 가운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개입이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틴의 유족들도 레이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CIA, FBI 등 국가기관과 마피아 등이 연루된 거대한 음모라는 것입니다.

 레이와 마틴의 유족들은 줄기차게 재심을 요청해 왔고 1999년 사건을 재심한 셀비 카운티 순회법정 배심원들은 암살사건이 미 정부 비밀조직이 연루되어 있다고 평결하기도 했지만 이 때는 이미 레이가 교도소에서 사망한 뒤였습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의혹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자료 : 서프라이즈 인물편(2016년,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제작팀 저, MBC C&I, p297-301)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2007년, 데이비드 사우스웰 저, 이종인 역, 이마고, p14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