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건축물

사랑으로 완성된 타지마할

제이스톤 2018. 3. 7. 13:56

사랑으로 완성된 타지마할(Taj Mahal)

 무갈(Mughal) 제국은 16세기 초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인도를 통치했던 이슬람 왕조이다. 이 제국의 전성기를 지배했던 5번째 왕 샤 자한(Shah jahan)은 왕비인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끔찍히 사랑하였다.  뭄타즈 마할은 그의 두 번재 왕비로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았으며, 키도 작고 피부도 검은 전형적인 드라비다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맑은 목소리와 꾸밈없는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왕비가 된 후에도 거드름을 피우거나 사치스럽지 않았다.

(이미지출처 : Pixabay)

 하지만 그보다 더 샤 자한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는 그녀가 그의 마음을 잘 알아준다는 점이었다. 언제나 황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그런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어디를 가던지 그녀와 함께였다. 샤 자한은 변방을 정벌하러 가는 길에도 그녀와 함께 갔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그만 숨지고 말았다. 급작스런 왕비의 죽음에 황제는 충격을 받았고 하룻밤사이에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고 전한다. 갑작스럽게 죽은 아내를 너무나 그리워한 나머지 그는 그녀를 위해 아름다운 무덤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타지마할의 규모는 가로 세로 57m이고 높이는 76m, 최고 높이 24.5m, 중앙 돔 직경이 17.7m라고 한다. 타지마할은 무갈 제국의 수도인 아그라(Agra) 남쪽 야무나 강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마치 신의 보좌가 낙원 위에 서 있듯이 정원 위에 우뚝 서 있다. 능묘를 둘러싼 네 개의 첨탑은 하늘로 솟아 오른 이 건물 전체에 균형미를 더해 준다. 전면에 펼쳐진 화원은 코란의 낙원의 모습으로 갖가지 향을 뿜는 꽃과 유실수로 꾸며져 있다. 붉은 사암으로 된 거대한 정문의 아치를 통과하면 넓은 마당에 수로를 둔 전형적인 무굴 양식의 정원과 분수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앞에 정원과 분수를 내려다보는 타지마할이 서있다. 중앙의 능묘, 좌우의 모스크, 앞쪽의 격자 형태의 정원, 타지마할이 비치는 일자형 수로, 그 속의 분수대, 네 모퉁이 첨탑인 미나렛, 산책로 등이 마치 황제 앞에 문무백관이 늘어선 듯한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중앙의 돔과 이웃한 첨탑의 절묘한 구성, 어떤 방향에서도 균형적인 아름다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마술적 자태, 시각에 대한 보정, 곳곳에 보석 세공을 한 듯한 장식 등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하루에 네 번씩 색깔이 바뀐다는 타지마할은 고요한 달빛이 비칠 때면 보라빛의 상아색으로 바뀌고 마치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달콤한 속삭임처럼 다가온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을 짓기 위해서 22년간 공사를 했으며, 국가 예산의 1/5을 투입하여 세계 각지의 대리석을 유입하였고 2만명의 노예와 세계 각국의 장인들을 동원하였다. 건축의 성계와 세부의 장식은 이란 사람이 했고, 돔은 터키 사람이 제작했다고 한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후 다시는 같은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수많은 장인들의 손목을 잘랐다고 한다. 무갈 제국의 건물은 한 번 짓고 나면 증축이나 개축을 하지 않는 원칙 때문에 완벽한 설계와 시공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그리하여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타지마할의 색조와 자태는 한결같다. 매년 우기마다 범람하는 야무나 강 옆의 타지마할은 한번도 침수받은 적이 없다고 하니 그 건물에 들인 정성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미지출처 : Pixabay)

 샤 자한이 제국을 통치하던 30년간 제국의 확장에 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타지마할의 건설로 국고가 결국에는 바닥을 드러내게 됨으로써 그의 업적은 빛을 잃게 되었다. 말년에는 타지마할의 반대쪽에 검정 대리석으로 거대한 자신의 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제의 임종과 국고의 탕진을 우려한 아들이 서로 황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그 중 야심이 가장 컸던 셋째 아들 아우랑제브가 재빨리 아그라를 차지함으로써 실질적 권력을 쥐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아그라 성채의 조그만 방에 감금하는 패륜적인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묘 건축을 중지시켰다. 샤 자한은 무려 8년이라는 기간 동안 여기에 갇혀 살다가 75세의 나이로 쓸쓸히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는 타지마할의 뭄타즈 마할의 관 옆에 안치되었다.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1983년, 타지마할은 건축의 비례미, 돔이나 아치의 유려한 곡선의 조화 등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준공된지 350년이 지난 이 유적은  나날이 훼손되어가고 있다. 인도 고고조사국에 따르면 아그라 지방의 유명한 일교차에 의한 대리석의 수축, 팽창을 반복하면서 돌사이의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공장들이 내 뿜는 매연과 자동차의 배기가스로 인해 산성비가 내리고 그로 인해 대리석이 풍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1995년 공장들의 폐쇄를 결정했으나 결국 로비에 의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인도 정부는 1997년에는 천연가스의 사용을 유도하는 안을 내 놓았다. 현재는 궁여지책으로 100여명의 청소부를 동원하여 배기가스로 변색되고 이끼와 곰팡이로 오염된 타지마할의 곳곳을 닦아 내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 아름다운 타지마할을 구경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타지마할이 힌두교와 이슬람의 분쟁 속에서도 종파와 종족을 넘어 사랑받고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신비하고도 숭고한 사랑의 아름다움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