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건축물

바위의 돔 사원

제이스톤 2018. 3. 7. 14:06

바위의 돔 사원(Dome of the Rock)

 기원전 950년경, 유다 왕국의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 성안의 동쪽편 산지에 순금으로 장식한 장엄미가 넘치는 솔로몬 성전을 세웠다. 성전이 세워진 후 이 지역은 성전산(Temple Mount)이라 불려지게 되었고 성도 예루살렘의 핵심부가 되었다. 이 성전은 이스라엘 최초의 성전으로 그들 신앙의 중심지요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이미지출처 : Pixabay)

 기원전 6세기 초, 바벨로니아 제국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도성을 불질렀고 이 때 성전도 소실되게 된다. 유다 왕국의 멸망 후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바벨로니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그들의 포로가 되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승리로 그들은 해방되었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폐허가 된 성전을 소규모로 재건하게 된다. 이 때가 기원전 515년경이었다. 성전산 위에 세워진 이 두 번째 성전은 페르시아, 희랍, 로마시대를 거치는 500여년 동안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기원전 37년에 로마제국의 후광으로 왕위에 오른 헤롯 왕은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두 번째 성전을 헐고 크고 화려한 성전을 새롭게 건축하였다. 대규모의 성전과 부속건물, 주변의 요새 등을 원래의 크기와 위용대로 재건하게 된다. 이것이 세 번째 성전이며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성전이기도 하다.

 서기 1세기 중엽, 로마제국의 통치에 항거하는 유대인들의 반란이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서기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성전 터에 서기 135년경에 하드리안 황제가 이교도의 아도니스(Adonis) 신전을 건설하였고, 비잔틴 시대에는 이곳을 통치했던 기독교 인들이 유대인 성전의 파괴를 보여주기 위해 황폐한 모습으로 성전산을 방치하였다. 오직 성전산의 서쪽편 축대인 "통곡의 벽"만이 남아 그곳의 역사를 가늠하게 해 줄 뿐이었다.

 서기 638년 이곳을 통치했던 아랍인들은 성전산의 큰 바위 위에서 자신들의 최고의 선지자 모하메드가 승천했다는 전설에 따라 그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바위를 종교적으로 기념 및 보존하기 위해 서기 692년 당시 예루살렘의 통치자인 압둘 말리크는 그들의 대사원을 건축하게 한다.

(이미지출처 : Pixabay)

 오늘날도 성전산 위에 우뚝 서 있어 예루살렘의 대표적 건축물이 되고 있는 "바위의 돔"이 바로 그것이다. 지름이 78피트, 높이가 108피트인 돔은 구리와 알미늄의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태양빛이 비칠 때는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반사된다. 1958~1964년 사이에 사원의 돔을 교체하면서 황금색 칠을 하여 황금사원이라고도 불린다.

 정팔각형의 건물인 이 사원 실내 한가운데에는 폭 13m, 높이 1.25~2m, 길이가 18m인 나무로 둘러싸인 넓직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아브라함이 제물로 바치던 제단이라고 전해진다. 표면에는 골이 패어 있어서 제물의 피가 흘러 내리도록 되어 있다. 모하메드가 승천했다는 바위도 바로 이 바위다. 이 때문에 회교에서는 메카 메디나와 함께 예루살렘을 3대 성지로 꼽고 있다.

 바위의 돔 사원의 모든 벽면에는 정교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어 아랍 건축예술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돔 내부에는 대리석 기둥들이 있는데 이 기둥의 색깔, 높이, 두께 등이 모두 제각각이다. 그 이유는 이 기둥들이 비잔틴이나 로마시대 신전의 것으로 복잡한 배경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바위의 돔은 새 단장을 하게 되었다. 요르단의 후세인 왕은 650만 달러의 사재로 돔을 24K의 순금으로 씌우게 했다. 1993년 시작된 공사는 15개월간 계속되어 1200장의 얇은 순금 판이 돔 위에 입혀져 진짜 황금의 돔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