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건축물

중국의 만리장성

제이스톤 2018. 3. 7. 14:16

중국의 만리장성

 중국 본토의 북쪽에 축조된 방어용 성벽이 바로 만리장성이다. 그 길이는 지도상 약 2,700km이지만 중복된 부분을 합쳐 실제로는 그 두 배가 넘는다. 춘추시대에 여러 나라에 의해 영토방어를 위해 국경에 쌓은 것이 장성의 기원으로 전국시대의 여러 나라도 이에 따랐다. 진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북방 흉노족의 남하를 방지하기 위해 기원전 214년부터 이 장성을 증축하여 연결하기 시작, 1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그 후에 역대 왕조들이 방어 수요에 따라 개수하였다. 명나라 때 와서는 선후로 약 200여년간 장성을 18차례나 수축하여 장성이 서쪽의 감숙성 가욕관에서 동쪽의 하북성 산해관까지 6개 성, 1개 도시를 가로 지나 6,700여 km에 달하는 현재에 이른다. 또 이 때 원래는 진흙으로 쌓았던 것을 벽돌로 견고하게 축조하였다. 청나라 때는 군사적인 의미를 상실하여 단지 몽골과의 정치적 경계선에 불과하였다. 일부의 장성은 파괴되었으나 대부분 오늘날까지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미지출처 : Pixabay)

 현재 장성은 일부만이 개방되어 있으며, 팔달령과 모전욕, 사마대가 일반인의 관광이 허락된다. 그 중에서도 팔달령은 명나라 때 장성의 대표 구간이다. 팔달령의 성벽의 높이는 8.5m, 폭은 6.5m으로 군마나 병사들이 이동하기에 편리하다. 위에는 높이 1.7m의 연속된 담을 만들고 총안(포를 밖으로 쏘기 위한 구멍)을 냈으며, 120m간격으로 돈대를 만들어 군사의 주둔과 감시에 이용하였다.

 이 장성을 쌓기 위해서 춘추시대의 12년 간의 공사동안 대략 40만의 노동자들이 사고와 질병 그리고 극도의 피로로 죽어갔다. 또 수천명의 시신이 흙으로 만든 벽안에 묻혔다는 소문도 있었다. 진시황제의 공사 때에도 30만의 군사와 수백만의 농민을 징발하여 이 장성을 연결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게 만든 만리장성은 북쪽의 민족들을 막지 못했다. 1211년 징기스칸의 군대를 막지 못했으며, 4세기가 지나 만주족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언제부턴가 만리장성을 소개할 때 달에서 유일하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건축물이라고 소개한다. 과연 달에서는 만리장성이 보이는 것일까? 먼저, 달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38만 4400km이다. 달에서 지구는 푸른 조그만 구의 형태로 보일 것이다. 이 거리에서 최고의 시력을 가진 사람이 식별할 수 있는 한계는 하얀 바탕에 두께 700m이상의 선명한 검은색이라야 볼 수 있다고 한다. 만리장성은 평균 높이가 7.8m, 폭은 6.5m, 위가 5.8m로서 말 몇마리가 나란히 서서 달릴 수 있는 정도의 너비이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봤을 때 만리장성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과장된 이야기이다. 만리장성이 달에서 보인다면 고속도로나 철도 등도 모두 달에서 보여야 할 것이다.

(이미지출처 : Pixabay)

 문화혁명 때는 농부들이 집을 수리하고 돼지우리를 만들기 위해 장성의 돌을 훔치곤 하였다. 그리하여 장벽의 군데군데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1977년 어떤 돌이라도 가지고 가는 것을 불법으로 공포하였다. 다시 복구된 장성은 일년에 수백만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현재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