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사고

메리 셀레스트(Mary Celeste) 호 실종 수수께끼

제이스톤 2018. 8. 21. 21:00

메리 셀레스트(Mary Celeste) 호 실종 수수께끼

 1872년 12월 5일, 포르투갈과 아졸레스 제도 사이에서 한 척의 배가 발견되었다. 288톤급의 길이 103피트, 폭 25피트인 이 배는 11월 6일 미국 뉴욕의 이스트리버 항을 출발해 이탈리아의 제노바로 향하고 있었다.

 이 부근을 지나가던 데이 그라시(Dei Gratia) 호가 이 배를 발견했는데 선장인 무어하우스(Morehouse)는 선원들에게 이 배에 올라 조사를 하도록 지시했다. 메리 셀레스트 호를 조사한 선원들은 배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다는 것과 구명정이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승무원은 7명이었으며 선장 브릭스(Briggs)와 아내 그리고 2살된 딸이 함께 타고 있었다.

(출처 : Pixabay)

 선장실에는 고장난 나침반이 놓여 있었고 육분의와 선적증명서가 사라졌다. 항해일지는 11월 25일에 마지막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미루어 짐작해 보면 10일 정도의 기간 동안 1,230km를 표류하였던 것이다. 배에는 돛이 2장만 달려 있고 물이 좀 차 있기는 했지만 충분히 항해가 가능한 상태였다.

 특이한 사실은 구명정은 사라졌는데 필요한 식량이나 식수는 전혀 가져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배의 금고에 있던 돈과 보물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배에는 화물로 공업용 알코올을 싣고 있었는데 그 중 일부가 사라진 상태였다.

 데이 그라시 호의 선원들은 메리 셀레스트 호를 견인하여 지브롤터까지 왔다. 그리고 12월 12일 영국에서 해사법정이 열렸다. 당시 재판관들은 선내 반란사건으로 생각했다. 화물 중 일부의 뚜껑이 열려 있었고 갑판 난간에는 도끼 자국이 있었으며 선장의 침실 바닥에는 긴 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선원들이 선장과 그의 가족을 죽이고 달아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란이라면 돈과 보석이 그대로 있는 점과 구명정에 식량과 물을 싣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결국 조사가 진행되면서 반란 사건은 아니라고 판명이 났다.

메리 셀레스트 호 브릭스 선장(출처 : historicmysteries.com)

 재판 중 등장한 또 하나의 가설은 해난구조료를 받아내기 위해 모어하우스와 브릭스가 꾸민 음모라는 것이다. 그러나 선장인 브릭스는 메레 셀레스트호에 대한 공동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배를 팔게 되면 해난구조료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기에 이 주장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졌다.

 메리 셀레스트 호 사건은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자극하여 여러 작가들이 이 소재를 다루었는데, 가장 유명한 소설이 셜록 홈즈의 저자 코넌 도일이 쓴 “하버쿡 제프슨의 증언(J. Habakuk Jephson's Statement)”이다. 이 소설로 무명의 작가였던 코넌 도일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메리 셀레스트 호가 발견되고 40여년이 흐른 후, 아벨 포스다이크라는 인물이 쓴 문서가 발표되었다. 그는 메리 셀레스트 호에 몰래 올라탔다고 하는데 그가 죽은 후 친구인 하워드 린포드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포스다이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국을 급히 떠나야 해서 친구인 브릭스 선장에게 부탁하여 배에 올랐다고 한다. 브릭스 선장은 자신의 어린 딸과 아내를 위해 뱃머리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이중 갑판을 만들었다. 그것이 메리 셀레스트 호가 발견되었을 때에 남아 있던 갑판 위의 흠집이라고 했다.

메리 셀레스트 호 항해도[아래쪽 점선 경로](출처 : underworldtales.com)

 그의 문서에 의하면, 선장은 부하들에게 인간이 옷을 입은 채로 헤엄을 칠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을 했다. 선장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갑판에서 뛰어내려 헤엄을 쳤다. 선원 중 몇몇이 선장을 따라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을 쳤고 나머지 사람들은 특별 갑판에 올라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그 때 상어의 습격을 받고 선원 한명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나머지 승무원들도 특별 갑판에 올라와 상황을 보려고 하다가 갑판이 부서지면서 사람들이 모두 바다에 빠져 버렸다고 한다. 갑판의 파편 위에 추락한 그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인 상어에게 습격을 당했고 유일한 생존자인 그는 며칠동안 표류한 끝에 아프리카의 어느 해안에 도착했다고 한다.

 포스다이크의 문서가 사후에 알려졌기 때문에 그가 부나 명성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그의 주장을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배에 몰래 탑승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나침반이 고장난 것과 육분의가 사라진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또 승무원의 대부분이 네덜란드인이었지만 그는 영국인이라고 적었다. 승무원들과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지냈다면 이러한 오류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 항해사에서 유례없는 사건으로 당시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았지만 확증은 없었다. 그동안 버뮤다 삼각지대를 지나갔다는 주장이나 해적에 의한 습격설, 크라켄같은 괴물의 습격설, UFO피랍설 등이 있었지만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메리 셀레스트 호(출처 : Wikimedia Commons)

 최근에 설득력있는 가설이 등장했다. 2006년에 안드레아 셀라(Andrea Sella) 박사가 내놓은 알코올 원인 가설이 그것이다. 그는 사라진 알코올이 어떤 작용을 한 것으로 추측하고 실험을 진행했다.

 메리 셀레스트 호처럼 알코올이 새어나간 형태로 공간을 만들고 불을 붙여보았더니 불이 공처럼 위로 올라가면서 폭발하였는데 높은 압력파가 발생하였다. 온도는 높지 않았으며 순식간에 불이 꺼졌고 재나 탄 흔적이 남지 않았다.

 폭발이 발생하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구명정을 타고 탈출을 했지만 불이 크게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배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바다를 표류하다가 죽어버렸다는 것이 그의 가설이다.


참고자료 : 풀리지 않는 세계사 미스터리2(1995년, 윤명현 편저, 하늘출판사, p226)

https://rune_master.blog.me/70168239032

http://oddstory.tistory.com/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