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건축물

[증기시대 7대 불가사의] 템즈강을 깨끗하게 런던 하수도

제이스톤 2018. 9. 15. 12:00

[증기시대 7대 불가사의] 런던 하수도(The Sewers of London)
템즈강을 깨끗하게, 템즈강 정화 사업

 19세기에는 거대한 증기선, 혁신적인 다리, 환상적인 건물과 같은 공학적 작품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중 어느 것도 거대하고 복잡한 인프라 프로젝트인 런던의 하수도만큼 많은 생명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1854년 런던의 소호(Soho) 지역에서 의사가 된 존 스노(John Snow)는 자신의 도시 지도를 만드는데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는 그해 콜레라 발생 징후가 발견된 후로 그 일을 해왔습니다. 그는 신중하게 각각의 새로운 발병이 나타난 곳을 표시했습니다.

런던 하수도(The Sewers of London) (출처 : Wikimedia Commons)

 콜레라는 19세기 대도시의 재앙이었고 창궐하면 수백명에서 수천명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에 가장 우세한 이론은 감염원이 공기 중의 냄새에 의해 옮겨졌다는 것으로 Miasma Theory라고 합니다. 그러나 스노는 그 질병이 다른 어떤 원인에 의해 전염된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1849년 그는 콜레라의 감염 경로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여 더러운 물을 통해 전염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지도는 그의 생각을 증명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는 최근의 모든 발병이 Broad Streat의 공중 급수 펌프 주변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펌프에 더 가깝게 발생했던 사례도 주민들이 여전히 Broad Street의 물을 선호하여 그쪽 펌프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특히 근처의 양조장에 근무하는 70명의 근로자는 아무도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곳의 물을 마시지 않고 무료로 제공되는 맥주를 마셨을 뿐입니다. 감염 패턴에 대한 그의 연구는 완벽했고 지역 평의회가 펌프에서 손잡이를 제거하여 감염을 막도록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58년에 그가 죽을 때까지 그의 생각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런던의 콜레라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지만 건설 당국은 감염원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있었습니다.

 런던 하수도 시스템을 업데이트하기 위한 계획은 수년간 진행되어 왔지만 1858년의 대규모 악취가 발생하면서 정치인들은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자금 마련 독촉을 받았습니다.

 런던만큼 큰 도시에서 미처리 하수를 없애는 것은 언제나 문제였습니다. 원래 지하의 오수구덩이는 인간 배설물을 담는 데 사용되어 왔습니다. 종종 이것은 거주지 바로 아래에 지어졌습니다. 그것이 가득 찼을 때, 구덩이는 몇년마다 청소가 필요했습니다. 런던에서는 약 20만개의 오물통이 생기면서 필요한 만큼 자주 청소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대신 기존 하수구와 연결되어 오물을 그대로 흘려 보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하수구는 인간의 배설물은 처리할 수 없는 빗물 배수관이었습니다. 오물은 자연의 개울과 시냇물을 뒤덮었고 템즈 강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강가에는 처리되지 않은 인간의 오물과 산업 폐수가 쌓였습니다. 1858년 7월과 8월에 폭염이 도시를 강타했을 때 강에서 나는 악취는 견딜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냄새가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마침내 당국이 행동에 나서도록 만들었습니다.

런던 하수도 공사 현장(출처 : Wikimedia Commons)

 토목공학자인 요셉 바젤게트(Joseph Bazalgette)는 수년 동안 런던 하수도 시스템에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해 왔습니다. 1849년에 대도시 하수도 위원회(the Metropolitan Sewers Commission)에 고용되었으며 첫 작업 중 하나는 하수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시스템이 엉망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터널이 건설되거나 연결되는 방법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이나 표준이 없었습니다. 시스템을 수정하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는 무수히 많았지만 모두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위원회와 진행 방법에 대한 의견차이로 진척이 거의 없었습니다.

 1856년, 대도심위원회(Metropolitan Board of Works)가 바젤게트를 수석 엔지니어로 승진시켜 실행 가능한 계획을 수립할 책임을 부여했습니다. 그의 설계는 하천이 강에 도달하기 전에 기존 하수도를 차단하고 도시의 동쪽과 바깥지역으로 하수를 운반하여 하류로 안전하게 방출할 수 있는 대형 배수설비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차단용 하수도(interceptor sewers)"라고 불리는 이 터널은 강을 따라 5개가 세워질 계획이었는데 3개는 템스강 북쪽에, 나머지 2개는 남쪽에 건설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수가 배수구를 통해 쉽게 흐르도록 하기 위해 바젤게트는 터널이 마일당 최소 2피트씩 경사를 가지는 것이 좋다고 결정했습니다. 템스 강이 마일당 3인치 밖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수구의 내용물을 들어올리기 위해 통로를 따라 간격을 두고 펌프장을 건설해야 하수가 강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끔찍하고 냄새나는 연기가 강에서 나오기 시작한 1858년이 되어서야 문제 해결을 위한 예산 300만 파운드가 의회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작업은 북부 하수도 3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을 덮는 방법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은 먼저 터널의 폭과 깊이를 파고 그 다음에 하수도의 내부에 벽돌을 쌓았습니다. 최대 강도를 얻기 위해 배수구 단면은 계란과 비슷한 타원형으로 설계되었습니다. 터널이 완성되면 그 위를 흙으로 다시 덮었습니다.

 그 당시 터널에서 일반적인 벽돌 시공은 로마시멘트(천연시멘트의 일종)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젤게트는 포틀랜드 시멘트(실리카, 알루미나, 산화철 및 석회를 포함하는 인조시멘트)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이는 선택이었지만 그는 로마시멘트보다 우수한 강도와 내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포틀랜드 시멘트가 벽돌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유지보수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1세기가 넘어서 터널을 조사할 때 입증되었습니다.

 건설 프로젝트를 복잡하게 만들었던 것 중 하나는 이미 런던 시내 아래에 많은 터널과 통로가 있었는데 바젤게트의 하수도는 경사진 상태로 계속 내려가면서 그것들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의 가장 큰 도전 과제는 1865년에 하수도가 Clerkenwell 근처의 지하철을 건너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150피트 길이의 지하 송수관이 궤도를 넘어 단철로 만들어져야 했습니다. 공사가 완료된 후 사람들은 그들의 머리 위로 6만 갤런의 하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하철을 타고 다녔습니다.

런던 하수도의 경사를 나타낸 스케치(출처 : Wikimedia Commons)

 프로젝트의 가장 복잡한 임무 중 하나는 길을 따라 펌프장을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젤게트는 에비 밀스(Abbey Mills)의 펌프장을 설계하여 지상에서 자신의 작업을 보여줄 기회를 얻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펌프장은 빅토리아 시대 건축의 기념물이 되었습니다.

 1865년 4월까지 1단계 프로젝트가 완료되고 가동을 위해 크로스니스(Crossness) 펌프장에서 축하 행사가 열렸습니다. 펌프를 구동한 엔진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240톤의 중량을 지니고 하수를 21피트 위로 끌어 올리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에비 밀스 펌스장과 마찬가지로 이 펌프장도 매력적이어서 우아한 무어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웨일즈 왕자는 행사에서 영예로운 손님이었고 바젤게트의 안내에 따라 손잡이를 돌려서 거대한 엔진을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자는 이어진 연설에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런던이 유럽에서 가장 건강한 도시 중 하나가 될 때를 고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수도 시스템이 완성되기 전에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주요 콜레라 발병이 있었습니다. 1866년 7월, 런던의 이스트 엔드에서 새로운 전염병이 발생했습니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의학적 통계를 담당하는 윌리엄 파르(William Farr)가 그것을 조사했습니다. 원래 그는 콜레라가 불결한 물에 의해 전염된다는 존 스노의 생각에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전염병과 관련한 데이터를 수집하면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환자가 발생한 가정에 배달된 물은 모두 동부 런던 수도회사(East London Water Company)를 통해서 공급되었습니다. 회사는 물이 정수가 되었다고 주장했지만 파르는 의심을 품었습니다. 그의 통계에 따르면 이 회사에서 물을 공급받은 사람들만이 병이 들었습니다. 그는 해당 지역을 방문하였을 때 수도관에 뱀장어의 서식지를 발견하였고 그 회사가 정수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파르는 스노의 초기 연구 결과처럼 콜레라가 물을 통해 전염되고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질병이 어떻게 전파되는지에 대한 지식이 정립되고 하수도 시스템과 깨끗한 물 공급이 이 끔찍한 질병을 종식시킬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새로운 하수도 시스템의 마지막 부분 중 하나는 1870년 7월 25일에 개장한 빅토리아 제방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세계 최대의 토목 공사 프로젝트의 절정이었습니다. 차단용 하수도 450마일(720km)을 건설하기 위해 3억1800만 개의 벽돌과 87만6천여 제곱야드(670,000㎥)의 콘크리트가 필요했습니다.

 여왕은 마지막 순간에 축제에 참석하는 것을 취소했지만 4년 후 바젤게트의 업적에 대해 기사 작위를 수여했습니다.

 비록 생전에 평가받지 못했지만 존 스노는 현대 역학(疫學, epidemiology)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브로드윅 스트리트(Broadwick Street)에 있는 펌프장에는 스노와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  증기 시대(the Age of Steam)란? 대략 1770-1914년 사이 산업혁명 기간을 의미합니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찾아온 시기라고 하여 이렇게 불리며 보통 19세기 전후를 가리킵니다.


참고자료 : http://www.unmuseum.org/7wonders/london_sewers.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