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자연

[자연계 7대 불가사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

제이스톤 2018. 9. 26. 18:00

[자연계 7대 불가사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Mt. Everest)

 1953년 5월 29일 아침에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는 눈 덮인 산 위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파트너인 텐징 노르게이(Tenzing Norgay)와 함께 등반한 힐러리는 눈 속에서 한발 한발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11시 30분에 힐러리는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큰 기쁨을 느꼈는데 우리가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에 있다는 것과 온 세상이 우리 발 아래 펼쳐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그는 마침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정복했습니다. 북극과 남극이 정복된 이후에도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베레스트 산 전경(출처 : Wikimedia Commons)

 에베레스트 산은 인도 북부 아시아의 중앙에 있는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입니다. 3억 2500만 년 전 이 지역은 바다의 바닥이었습니다. 6천만 년 전 인도의 지각 판이 북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여 유라시아 판과 겹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교차점의 땅이 부서져 위로 밀려났습니다. 이것이 히말라야 산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산은 계속 솟아오르고 있으며 매년 평균 2인치씩 높아집니다.

 히말라야 산맥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1808년까지 영국인들이 이 지역에 대한 삼각 측량을 실시하여 많은 봉우리의 실제 높이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완료하는데 수년이 걸렸으며 1830년에서 1843년 사이 인도의 측량 관리였던 George Everest 경이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네팔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의 측정을 시도하면서 좌절감을 맛보았습니다. 네팔 정부는 영국의 동기를 의심하였고 조사단의 입국을 거절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영국인들은 150마일(240km) 떨어진 곳에서 제한된 관측을 해야 했습니다. 1847년 초에 당시 최고봉으로 알려진 Kangchenjunga보다 더 높다고 추정했지만 정확한 측정을 할 수 없었습니다.

 1852년에 인도 수학자이자 측량가인 Radhanath Sikdar는 1년 전에 수집된 데이터를 사용하여 "XV"라고 표시된 이 새로운 봉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 발표는 1856년 3월까지 연기되었으며, 계산이 정확한지 재검토되었습니다. 최근의 조사는 높이가 29,029피트(8,848m)라고 알려져 있지만 산의 만년설을 제외한 높이가 29,002피트(8,840m)로 결정되었습니다.

에베레스트의 석양(출처 : Pixabay)

 조사팀은 산봉우리같은 지형지물에 현지 이름을 사용하도록 지시받았지만 당시 조사의 리더인 앤드류 워(Andrew Waugh)는 특정 하나에 호감이 가지 않았고 전임자인 에버리스트 (George Everest)의 이름을 따서 이 산봉우리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왕립지리학회( Royal Geographic Society)는 에베레스트 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을 받아 들였습니다. 이름은 아직 보편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중국에서는 Qomolangma, 네팔에서는 Sagarmãthã로 불립니다. 산은 네팔과 중국의 지배하에 있는 티베트 국경지대에 있습니다.

 1890년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갈 수 있는가?(Can Mount Everest be Climbed?)"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등산가 클린턴 덴트(Cinton Dent)는 이 산봉우리를 등반하는 것을 숙고했지만 직접적인 문제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었습니다. 네팔과 티베트는 이 지역에 입국하려는 요청을 거부하였습니다. 1913년에 JB Noel 탐험대장은 현지인으로 위장하고 산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시도했지만 티베트군에 의해 돌아오기 전까지 40마일(65km) 근처까지 밖에 가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1921년 티베트는 영국의 탐험대가 산의 2300피트 지역까지 올라가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이듬해 팀원 중 일부는 정상 등반의 첫 시도를 위해 돌아왔지만 눈사태로 7명의 포터가 사망하자 원정대는 취소되었습니다.

 1924년 George Mallory는 신입대원 Sandy Irvine과 함께 처음 2번의 영국 탐험에 참여하여 정상에 오르려고 했습니다. 동료 산악인에 따르면 그들은 소용돌이 치는 눈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을 때 정상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내려오지 않았고 Mallory의 얼어붙은 시신은 1999년에 발견되었습니다. 29년이 지나 Hillary와 Tenzing이 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 Mallory 일행이 이곳에 왔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산에서 발생한 많은 죽음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에베레스트의 온도는 예고없이 급격히 떨어져 동상에 이르게 합니다. 극심한 강풍이 산꼭대기에서 산악인을 쓰러트릴 수도 있습니다. 높은 고도로 인해 기압은 지상의 1/3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체내에 필요한 산소를 호흡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산악인은 쉽게 피곤해지며 사고가 발생 확률이 높아져 다른 곳의 등산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 Uwe Gille)

 이러한 이유로 26,246피트(8,000m)는 "죽음의 지대(Death Zone)"라고 불리는 곳에서 종종 산소통을 이용해 산소를 공급받기도 합니다. 힐러리와 텐징은 1953년 최고봉을 올랐을 때 병에 든 산소를 사용했고 수년 동안 정상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78년 5월, 이탈리아의 Reinhold Messner와 오스트리아의 Peter Habeler가 산소 보충없이 등반에 성공했고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힐러리(Hillary)와 텐징(Tenzing)은 네팔에서 접근이 가능한 "남동쪽 릿지(Southeast Ridge)"라고 불리는 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정책이 티베트에서의 접근을 허용하면서 두 번째 루트인 "동북 릿지"가 대중화되었습니다. 산에는 13개의 루트가 있지만, 이들은 더 어려워서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해 전문 가이드를 고용하는 초심자가 점점 늘어나서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러한 등반 형태는 경로에 따라 4-8만 달러의 비용이 들고 고객은 등반가의 경험이 거의 필요하지 않습니다. 1996년 5월 11일 갑작스런 눈보라와 하나의 경로에 등반가가 몰리면서 하루에만 8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등반 시즌은 이 산악 지역 최악의 해가 되었습니다.

 2010년 현재 3,142명의 사람들이 산 정상에 5,104회에 도달했습니다. 산을 오르려고 시도하는 동안 219명이 사망했습니다. 에베레스트의 어려운 조건 때문에 시체를 회수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으며 주요 루트에서 냉동 상태의 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위험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정복하려는 모험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산을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는 왜 에베레스트를 오르기를 원하는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참고자료 : http://www.unmuseum.org/7wonders/everest.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