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대문명.유물.유적

누구의 작품인가? 나스카 평원의 거대한 문양

누구의 작품인가? 나스카 평원의 거대한 문양

 페루 남부 지방의 사막 지대인 나스카 평원에서는 하늘 위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그림들이 펼쳐져 있다. 이 지역에는 새, 거미, 물고기, 원숭이, 도마뱀, 나무, 꽃 등 온갖 동식물이 약 100여개 정도 그려져 있으며 삼각형, 사각형, 원 같은 도형과 어지럽게 널려 있는 직선과 곡선 등 기하학적인 문양까지 있다. 이 그림들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이 그려진 면적이 대략 500km2에 이르고 있으며 평지만이 아니라 바닥이 드러나 하천의 가운데나 깊은 계곡, 바위 등 굴곡이나 장애와는 상관없이 정밀도가 높은 직선으로 그려져 있다. 개개의 그림들이 작은 것은 30m 정도되는 것도 있으나 정교하게 그려진 새의 날개는 130m이고 날개를 가로지르는 선분의 길이는 6km나 된다고 한다.

나스카 문양, 새(이미지출처 : Pixabay)

 나스카의 지표면은 철 함유량이 높은 상이한 크기의 돌 파편들로 이루어진 지각층을 갖고 있다. 그런데 철이 대기 중의 산소와 접촉해서 산화되었기 때문에 이 맨 위의 지층은 암갈색을 띠고 있다. 그 밑에는 고운 충적토가 석고와 섞여서 노르스름한 층을 형성하고 있다. 산화된 돌더미를 한쪽으로 치우면 그 밑에 있던 밝은 심토가 뚜렷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돌을 치우는 방법으로 이 그림들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1500~12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곳의 한가지 특수한 현상 때문이다. 검은색의 지표면은 아주 많은 열기가 저장된다. 이렇게 모아진 열기는 다시 위쪽으로 새어나가려는 물리적 특성을 띤다. 이 과정에서 바람에 의해 쌓인 먼지 입자들을 다시 위로 밀어내 상공의 대기층으로 날려 보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곳의 기후이다. 나스카 평원은 다른 지역과 달리 대단히 건조하다. 안데스 산맥에서 연중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의 영향으로 바다에서 와야 할 습기가 거의 오지 못하기 때문에 연 강수량이 몇십mm에 불과하다. 비가 별로 오지 않아 자갈과 흙들이 떠내려 가거나 침식되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었다. 300m이상 높이의 하늘에서 내려다 보아야만 모두다 볼 수 있는 이러한 그림들을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을까?

나스카 문양, 나스카 라인(나스카문양 배치도, 구글맵 화면 캡처)

 1926년, 미국의 알프레드 크뢰버와 페루의 고고학자 토리비오 메히아 세스페는 나스카 강 근처에 있는 어느 작은 계곡에서 작업 중이었다. 그곳에는 잉카 이전 시대의 주거지가 흩어져 있었다. 그들은 계곡의 위쪽에도 비슷한 종류의 유물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가파른 계곡을 기어 올라갔다. 능선 위에 선 그들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발 밑에 펼쳐진 검은 갈색의 황야 위로 환한 색의 똑바른 직선들이 도드라져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표식에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계곡에서 발견된 특이한 지하 수로의 발굴작업이었기 때문이다. 1940년에야 세스페는 이 선들 가운데 둘을 탐사했고 그에 관한 글을 발표했다. 그것이 나스카에 관한 첫 번째 출판물이었다.

 1930년에 비행기가 처음으로 페루에 도입되자 나스카의 대평원 위로 새로운 비행 노선이 하나 생겨나게 되었다. 그 뒤로 비행기 조종사들은 나스카 사막이 기하학적 도형으로 덮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단조로운 땅을 누군가가 장식이라도 하려 했던 것처럼 아주 선명하고 아름다운 도형들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조종사들은 그들이 발견한 것을 외부에 알렸고, 그 현상에 대해 학자들이 점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것이 고대의 관개시설일 것이라는 견해가 득세하게 되었다.

 1941년 6월 22일, 뉴욕 롱아일랜드 대학의 역사학자인 코속 박사는 경비행기를 타고 이카와 나스카 사이에 잉카인들의 수로를 찾아 나섰다. 하늘에서 바라본 나스카 평원에서 가느다란 두 개의 평행선을 발견했다. 그 선을 따라가던 그의 시선은 2km정도 달리다가 활주로로 보이는 것에서 멈추었다. 폭은 30m에 길이는 족히 1km에 달했다. 계속 그곳을 맴돌던 그는 또다른 '활주로'를 발견하였고 새의 윤곽 그림과 원숭이 그림까지 발견하게 되었다. 비행을 마친 코속 박사는 고고학자들을 찾아갔다. 고고학자들은 그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독일의 여류 지리학자이자 수학자인 마리아 라이헤가 페루를 여행했다. 라이헤 여사는 안데스 지역의 유적지와 달력의 연관성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코속 박사를 만나게 되었고 1946년, 그의 권유로 나스카 연구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녀는 페루의 공군 기관인 국립 공중사진국의 협조를 얻어 나스카에 대한 첫 공중 촬영과 공중 측량에 성공하였다.

나스카 문양, 범고래

 이렇게 거대한 그림을 누가 만든 것일까? 짐 우드만은 파라카스의 무덤에서 나온 그림과 그 직물에 근거를 두고 열기구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 직물을 조사한 결과 현재 사용되는 낙하산이나 열기구의 소재보다 훨씬 섬세하게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의 도자기에는 기구나 연으로 보이는 깃발과 끈을 늘어뜨리면서 비행하는 물체의 그림이 수없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문양의 한쪽 끝에는 불에 탄 구멍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이 열기구에 바람을 넣기 위해 불을 지폈던 흔적이라 추측한다. 잉카의 전설에서도 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우드만은 나스카의 그 활주로는 특별한 행사나 종교 의식 때 열기구가 하늘로 올라가던 장소라고 주장한다. 도자기와 직물의 그림을 본따 당시의 기술만을 이용하여 열기구를 만들어 시험해 본 결과 열기구로 비행하는데 성공했다. 즉 나스카 인들은 그 열기구를 타고 있는 사람의 지시로 그림을 그렸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리고 나스카 평원 부근에서 발견된 약 2m2의 작은 그림은 더욱 정교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설계도로 추정했다. 또, 말뚝에 끈을 묶어 똑바른 직선을, 컴퍼스와 같은 원리로 중심점을 이용하여 곡선을 그렸을 것이라 주장하며 말뚝을 박았던 흔적과 중심점의 발견을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

 에리히 폰 대니켄은 오랜 옛날 이 곳에 외계인들이 착륙을 하였고 그것을 지켜 본 지상의 원주민들은 고차원의 문명을 접하고서 그들을 '신'이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스카에 남아 있는 사다리꼴의 표면은 그 때 우주선이 착륙하면서 생긴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원주민들은 신들이 새로운 선물을 갖고 다시 그 곳을 방문해 주길 바랬다. 원주민들은 지상에서 그들이 환영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 사막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 그림들은 사람들의 종교적 상상력 속에 확고히 뿌리박히면서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니켄의 이러한 주장에 뒤를 이어, 어떤 사람들은 외계인들이 고원에 도착하여 두 개의 활주로를 건설했다고 주장한다. 지구에 도착한 그들은 땅 속에 묻혀 있는 에너지 센터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린 것이며 이 선들은 일종의 반터널식의 에너지 운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지구에 적응하지 못하여 우주선을 타고 철수하였다고 주장한다. 나스카 근처의 파라카스 지방의 귀족이나 승려들의 무덤에서 그 유해를 덮고 있는 기다란 면포에서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들이 목 주변에 있는 여러 리본의 힘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외계인을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스카 문양, 거미(이미지출처 : Pixabay)

 그렇다면 이 그림들은 무슨 목적으로 그려졌을까? 자신의 일생을 나스카 연구에 바친 마리아 라이헤 여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거대한 천문력이라고 주장한다. 나스카의 그림들이 태양보다는 달에 관계된 그림이 많다는 것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라이헤 여사는 달은 일년에 12번씩 움직이고 기울어지는 각도도 달라지며 18년 주기로 늘었다 줄었다 했으므로 상당히 많은 선들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 이 그림들이 별자리를 표현한 것이며 천체의 출몰방향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거미그림의 척추선이 오리온자리의 출현방향과 일치하고 있으며 벌새 그림의 부리는 하지 때 일몰방향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문양을 컴퓨터로 천체와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본 결과 별다른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스카인들이 농경을 위하여 이 그림을 그렸다고 주장한다. 나스카는 건조한 기후로 사막과 같다. 그래서 이들은 식량이 가장 문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안데스 산맥에서 내린 비가 이 지역으로 흘러 드는데 나스카 문양의 상당수가 물과 관련된 것이다. 개구리, 거위, 범고래 등 수중 동물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비와 토양의 비옥함을 빌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평원에 난잡하게 그려진 선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나스카의 평원이 잉카 이전 시대의 운동경기장이라는 주장도 있다. 인디오 달리기 선수들이 특별한 신들을 기념하기 위해 혹은 제례적 의미의 경기가 열릴 때에 그 그림들과 선들을 따라 달렸다는 것이다. 도로나 관개시설이었다는 주장, 인디오 부족의 문장이었다는 주장 등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 구글맵에서 보기 :


참고 자료 : 나스카 유적의 비밀(1999년, 카르멘 로르바흐 저, 박영구 역, 푸른역사)

나스카의 수수께끼(2001년, 에리히 폰 대니켄 저, 이영희 역, 삼진기획)

그외 다수의 인터넷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