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멩겔레(Josef Mengele) 박사는 나치 친위대 장교이자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내과의사였습니다. 그는 수용소로 끌려 온 수감자들 중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강제 노역에 동원할지를 결정하였는데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였던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아우슈비츠의 희생자들은 그는 ‘죽음의 천사(Angel of Death)’라고 불렀는데 의사인 그의 타락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뮌헨 대학의 우수한 의학도로 주목받던 그는 나치의 국가주의 이념에 심취했고 강렬한 출세욕과 명예욕에 휩싸여 나치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1931년 20세의 나이에 준군사 조직인 철모단에 가입하였고 이 철모단은 1933년에 나치 돌격대에 흡수되었습니다. 1937년에는 나치당원이 되었고 1938년에는 친위대에 가입하였습니다. 1940년 예비군 의무대로 배속되었는데 1942년 러시아 전선에서 부상을 당한 후 전투 부적합 판정을 받았지만 친위대 대위로 진급하게 됩니다.
멩겔레는 1943년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의무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수용소에 머문 21개월간 그는 다른 의무관과 함께 가스실로 보낼 유대인과 강제노역을 담당할 유대인 선별 작업을 담당하였습니다.
수용소의 생존자들은 멩겔레가 하얀 가운을 입고 있으면 그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할 것이고, 파란 옷을 입고 나타난다면 누군가 수술대에 묶여 눕히게 될 것이며, 회색 제복을 입었다면 여러가지 생체실험을 거친 후에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의 만행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희생자들의 머리카락을 따로 모아 카펫을 짜도록 했고 피부를 떼어 전등갓을 만들게 하는 등 사람의 몸을 하나의 도구로 취급했습니다.
멩겔레는 수용소에 도착한 수감자 가운데 기형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오비츠(Ovitz) 가족도 있었습니다. 루마니아 출신 예술가 가족인 이들은 10명 중 7명이 난쟁이였습니다. 수용소로 끌려오기 전 릴리풋 곡예단(Lilliput Troupe)이라는 이름으로 동유럽을 전전하며 공연을 하였는데 멩겔레는 이들을 종종 ‘나의 난쟁이 가족’이라고 부르며 아꼈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유독 쌍둥이들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경비병들에게 쌍둥이들을 혹사시키지 말라고 특명을 내리기도 했는데 쌍둥이들에게는 더 많은 식사와 더 좋은 옷,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였습니다. ‘멩겔레의 아이들’이라 불리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멩겔레는 장인인 페르슈어 교수가 쌍둥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장인의 눈에 들고자 실험 대상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멩겔레는 쌍둥이들의 눈에 염색약을 주사하고 눈의 색깔이 바뀔 수 있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실험한 눈을 강제로 적출당해 집무실 벽에 핀으로 꽂아 진열했습니다. 또, 혈액형이 다른 쌍둥이의 피를 뽑아 다른 한쪽에 수혈하기도 하였으며, 성별이 다른 쌍둥이의 생식기를 맞바꾸는 수술을 단행하고, 인공으로 샴쌍둥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괴이한 실험은 점점 쌍둥이에 대한 집착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멩겔레의 음모를 알 수 없었던 쌍둥이들은 그가 베푼 친절 때문에 죽기 전까지도 그를 ‘요제프 아저씨’라 부르며 따랐다고 합니다.
멩겔레는 여성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도 하였는데 특별 작업을 할 사람을 선발한다는 명목으로 수감자들을 데려가 불임수술과 충격요법 등 실험을 하였고, 수감자들은 병에 걸리거나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의사였던 니슬리 미클로시는 법의학과 독일어를 공부한 덕분에 멩겔레에게 뽑혀 그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는데 훗날 멩겔레의 실험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멩겔레의 실험 대상이 된 이들은 일반 수감자들보다 나은 주거 환경에서 보다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가스실로 보내질 위험도 없었지만 멩겔레는 이들을 실험재료로만 생각할 뿐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극악했던 멩겔레의 악행은 수십년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던 그는 무사히 석방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생활하였습니다. 1946년 미국이 친위대 소속 의사 23명에 대한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하자 피난민을 가장하여 1949년 아르헨티나로 도주했습니다.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위장해 일했다고 하며 1959년 7월 서독 정부가 영장을 발부하자 파라과이로 도망갔다가 다시 브라질로 이주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재혼을 하였는데 말년에는 자신이 붙잡힐 것을 두려워하며 집 주변에 조금이라도 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 밖을 내다보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불면증에 시달렸고 여러 가지 정신병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합니다.
멩겔레는 1979년 브라질에서 바다 수영을 즐기다 뇌졸중 발작으로 익사하였습니다. 1985년 브라질에 있는 어느 무덤의 주인이 멩겔레라는 소문이 퍼졌고 발견된 유골의 사진과 무덤 속에 남겨진 치아의 DNA 등을 분석한 결과 1993년에 그의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참고자료 : 서프라이즈 인물편(2016년,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제작팀 저, MBC C&I, p85-89)
https://ko.wikipedia.org/wiki/요제프_멩겔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