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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인물편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

 나치 사냥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신분을 세탁하고 세계 각지에 잠적한 나치 전범을을 잡아내 재판을 받게 했던 시몬 비젠탈(Simon Wiesenthal)의 별명입니다. 1908년 오스트리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성공한 건축가였습니다.

시몬 비젠탈(출처 : Wikimedia Commons)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1941년 나치에 붙잡혀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폴란드인으로 신분증을 위조할 수 있었던 아내는 무사할 수 있었지만 유대인이었던 그와 그의 가족들은 수용소에서 끔찍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젠탈은 가족들이 처형되는 모습까지 지켜봐야 했고, 그의 일가친척만 무려 89명이 나치의 손에 희생되었습니다. 비젠탈은 지역을 옮겨가며 수용소에 억류되었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으며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북부의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종전을 맞이하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헤어졌던 아내와 재회했지만 그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다시 얻은 삶을 의미있는 일에 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출처 : Wikimedia Commons)

 비젠탈은 유대인의 학살에 책임이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이히만의 주변인물들을 찾아다니며 탐문을 시작했고 16년에 걸쳐 나치 전범이라는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이를 경찰에 제공하여 마침내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고 있는 아이히만을 체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히만은 결국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유명세를 탄 비젠탈이 다시 한번 세상이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나치 추종자들은 유대인 소녀의 기록인 ‘안내의 일기’가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비젠탈은 다시 정황에 대해 꼼꼼히 따져 안네 프랑크의 가족은 연행했던 질버바우어 장교를 찾아내 체포하는데 일조했습니다. 질버바우어는 관련된 사실을 인정했고 그제서야 나치 추종자들의 망언은 사라졌습니다.

안네 프랑크(출처 : Flickr.com)

 비젠탈은 체계적으로 나치의 만행을 기록하고 나치전범을 추적하기 위해 수용소 생존자 30명과 함께 유대역사기록센터를 설립하였습니다. 경찰처럼 수사를 하거나 현장에 나가 직접 체포하는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나치 전범들과 관련된 자료를 세심하게 수집하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그들이 숨어있는 곳을 사법당국에 알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독일군의 잔혹 행위에 가담한 사람들과 당시 목격자를 서로 연결하는 교차 색인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비젠탈이 만든 색인 카드는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중요한 자료로 쓰였습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50년간 비젠탈이 추적해서 법정에 세운 전범들은 1,100여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젠탈의 이러한 활동은 목숨을 위태롭게 하였습니다. 협박편지나 전화는 일상이었고 집 앞에서 폭탄이 터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비젠탈은 2005년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참고자료 : 서프라이즈 인물편(2016년,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제작팀 저, MBC C&I, p106-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