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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불가사의

세계 7대 불가사의의 역사

세계 7대 불가사의의 역사

 1633년 루이 13세가 임명한 뵈시우스 대사가 교황 우르반 8세의 허락하에 교황청에 있는 도서관의 책들을 열람하고 있었다. 320장이나 되는 다소 두꺼운 서류를 보던 뵈시우스는 짤막한 글 하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겨우 6장에 지나지 않는 짧은 글이었고 마지막 부분도 사라지고 없었지만 비잔틴의 필론(Philon)이라는 사람이 쓴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글을 발견했던 것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역사(도서관이미지 - 출처 : Pixabay)

 자신이 발견한 자료의 중요성을 알아차린 뵈시우스는 라틴어로 번역한 후 책으로 출간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출판을 미루는 사이 164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레로 알라티우스가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알라티우스는 당시 교황청의 도서관에 근무하는 직원이었기 때문에 뵈시우스가 발견한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책이 출간되지마자 예상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상상으로만 알려졌던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대한 신드롬이 퍼지면서 현지를 방문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료에 대한 신빙성이 제기되었다. 교황청에 보관된 모든 자료는 14세기에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면밀하게 조사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이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의 학자들은 교황청에 소장된 모든 자료를 조사해서 색인 목록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조사한 결과, 필론의 원고는 진짜로 판명났다. 학자들이 조사할 당시에 이 원고는 교황청에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필론의 원고는 원래 독일에 있는 막시밀리언 공작의 하이델베르그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정치적인 협상에 의해 이 자료가 1623년에 알프스를 거쳐 교황청에 옮겨졌다고 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역사(책이미지 - 출처 : Pixabay)

 알라티우스의 번역에 신통치 않아 오류가 많이 있었지만 책은 계속 팔려나갔다. 1797년 프랑스 혁명 군대가 이탈리아로 원정을 갔을 때, 교황청 도서관의 서류 일부를 인계받으면서 이 원고도 프랑스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자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F. J. 바스트에 의해 1805년에 번역본이 발간되며 알라티우스의 오역은 어느 정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 후 유럽의 정세가 급속도로 바뀌면서 나폴레옹이 실각하자 교황 피오 7세가 임명한 대사가 프랑스로 가서 교황청에서 가져간 모든 유물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독일 측에서 필론의 원고에 대해 원 소유자는 자신들이라며 항의했다. 결국 수차례 협상 끝에 이 자료는 독일에서 가져갔고 현재는 하이델베르그 대학교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학자들은 이 원고가 10세기초에 가필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고에는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레움이 빠져 있지만 그가 '할리카르나소스'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원본에는 마우솔레움이 7개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원고에는 6가지만 적혀 있는데 바빌론의 공중정원, 이집트의 피라미드,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 로도스 거상, 바빌론 성벽,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이 그것이다.

 필론은 많은 책을 저술한 언어학의 대가로 불리지만 원래는 기계기술자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었다. 수학자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마 다방면에 성과를 냈던 것 같다. 항구를 건설하고 기중기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방법, 성을 공격하는 방법, 마을을 방어하고 공격하는 방법 등에 관한 책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론의 이 원고는 기원전 225년경에 쓰여졌다고 보는데 그것은 기원전 290년경에 완성된 로도스 섬의 거상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론 이전에는 7가지의 목록을 정한 사람이 없었으므로 필론이 처음으로 7대 불가사의의 목록을 정리했다고 보여진다. 물론 그가 살았던 시기에 이미 많은 불가사의가 파괴된 상태였으므로 당시 전해져 오는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자료 : 신화와 역사로 읽는 세계 7대 불가사의(2001년, 이종호 저, 뜨인돌, p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