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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없이 암컷만으로 번성하는 물고기

수컷없이 암컷만으로 번성하는 물고기

 멕시코 북동부와 미국 텍사스 주 남쪽으로 흐르는 따뜻한 강물에는 송사리처럼 생긴 작은 물고기가 살고 있습니다. 먹이 등의 여건이 맞으면 불과 몇 달 만에 성체가 되어 매달 새끼를 60-100마리씩 낳는 번식력을 보인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이 물고기는 모두 암컷이라고 합니다.

 ‘아마존 몰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 물고기는 그리스 신화의 여전사 부족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이 물고기가 단성생식으로 번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1932년이었습니다.

아마존 몰리아마존 몰리(오른쪽)가 다른 종의 수컷을 유인하고 있다(출처 : 한겨레)

 암컷만 존재하는 아마존 몰리는 번식을 할 때, 유전적으로 가까운 다른 종 물고기 수컷을 유인해 짝짓기를 합니다. 암컷의 난자가 발생을 시작하기 위해 정자의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자가 난자를 뚫고 발생을 촉발하지만 수컷의 DNA는 난자와 결합하지 못하고 모두 파괴됩니다. 수컷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유전자만으로 후손을 만드는 것입니다.

 미생물이나 식물 가운데 암수 구분없이 어미의 유전자를 그대로 복제하는 무성생식이 알려져 있었지만 척추동물에서 이런 방식의 생식이 가능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를 밝혀내는 데는 분자유전학이 필요했습니다.

 미국 워싱턴대 웨슬리 워런 등의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생태학 및 진화’에 실린 논문에서 아마존 몰리의 비밀을 분자 차원에서 밝혔습니다. 척추동물에서 암컷만으로 번식하는 단성생식은 극히 예외적인 일입니다.

 생물이 암수의 구분이 있고 유성생식을 하는 이유는 유전자 분열 과정에서의 돌연변이 때문입니다. 유성생식을 하면 양쪽의 염색체가 반씩 결합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잘못된 유전자가 제거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반면 무성생식에서는 조상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기 때문에 잘못된 유전자가 점점 쌓이게 됩니다.

 또 하나 유성생식의 장점은 유전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환경의 변화나 질병 등이 닥쳤을 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어 멸종이냐 번식이냐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연구자들은 아마존 몰리가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종이기 때문에 유전적 오류(돌연변이 형질)가 쌓이지 않은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그런데 게놈을 분석해 보니 정반대였습니다. 이 물고기는 10만년이나 진화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일반적인 무성생식이라면 이미 멸종하고도 남을 기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마존 몰리의 게놈에서는 나쁜 돌연변이가 축척돼 퇴화한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물고기는 단일한 복제물이 아니라 열어 종류의 복제 집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로 다른 복제집단 사이의 다양성이 이 물고기의 진화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면역체계를 담당하는 유전자의 다양성이 높았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물고기가 애초에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물고기가 잡종을 형성해 탄생했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이런 종간 잡종은 조상보다 튼튼한 형질을 가지는 ‘잡종 강세’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암말과 수탕나귀의 교배로 태어난 노새는 힘이 세고 튼튼합니다. 다만 노새는 번식능력이 없고 아마존 몰리는 번식을 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붕어복제 방식으로 번식하는 붕어(출처 : 한겨레)

 그 이후에 아마존 몰리처럼 암컷 중심으로 번성하는 척추동물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동안 어류, 양서류, 파충류에서 모두 50여 종이 발견되었고, 또 일시적으로나마 복제 방식으로 번식하는 종도 50여 종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흔히 발견되는 붕어가 이러한 복제 방식으로 번식을 하는 물고기에 속한다고 합니다.

 유성생식을 기본으로 하지만 서식지에 짝짓기 상대가 없을 때, 암컷 붕어는 잉어 등의 수컷 정자의 도움을 받아 북제 붕어를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이런 붕어는 아마존 몰리와 달리 게놈의 크기를 3-4배 늘린 다배체 복제를 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아마존 몰리의 탄생은 기적적인 행운의 결과였습니다. 그동안 많은 과학자들이 인공적으로 두 종의 교배를 시도하였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아마존 몰리는 유성생식을 하지 않지만 단성생식의 부작용을 피할 수 있는 절묘한 유전형질을 갖춘 희귀한 잡종입니다.


- 관련 기사 보기 :

http://www.hani.co.kr/arti/animalpeople/ecology_evolution/8632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