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불가사의

가림토 문자와 훈민정음

가림토문자와 훈민정음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외국 학자들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 체계를 어떻게 단시간에 갑자기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 놀라움을 자아낸다. 그래서 그 기원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주장의 핵심에는 환단고기(桓檀古記, 한단고기라고도 한다)에 전하는 가림토(加臨土) 문자가 있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태백일사에는 고조선 3대 단군 가륵 경자 2년(기원전 2181)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환단고기에는 가림토 문자가 실려 있는데 이를 보면 훈민정음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단고기는 1911년 묘향산 단군암에서 평안북도 선천 출신 계연수가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라는 네 종류의 책을 필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들은 편찬 연대가 너무 늦은 데다 사료로서 문제점이 있어 위서라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었고 여기에 실린 내용을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가림토 문자

 고유문자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역사의 기록에서 그 근거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세종실록 세종 25년(1443)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이 기록을 보면 훈민정음은 옛 전자를 모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 집현전 부제학이던 최만리는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그의 상소문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설혹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날의 전문을 모방하였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것에 반대되는 실로 의거할 데가 없습니다"

 여기서 옛 전자(篆字)란 것을 옛 글자로 해석하여 고유의 어떤 문자가 있다는 주장인데, 반대학자들은 이를 한자의 가장 오랜 서체인 전서체로 해석하고 있다. 옹호론자들은 훈민정음의 글자 모양이 한자의 전서체와는 닮지 않았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가림토 문자가 새겨진 유물이 간혹 발견되고 있다. 1994년 12월 문화일보에서는 만주 경박호 인근에서 가림토 문자가 새겨진 비석 탁본 1점을 공개했다고 한다. 높이는 2m에 너비 32cm정도 되는 것이었다. 2003년 3월에는 부산일보는 경북 경산시 명마산 중턱에서 가림토로 추정되는 문자가 다수 새겨진 바위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가로 1.8m 세로 3.4m에 이르는 이 바위에 상형문자에 가까운 글꼴로 ㅅ, ㅈ, ㄴ, ㅠ 등 가림토와 비슷한 형태의 자모가 각인돼 있다고 했다.

 책에 실린 내용을 확인하고자 관련 기사를 직접 검색해 보았으나 검색되지 않았다(오래 된 것이라 인터넷 서비스가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만주에서 탁본을 했다는 사진은 일부 가림토 문자와 비슷한 글자가 있긴 하지만 전체가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여러 블로그 등에서 이것이 돌궐 문자라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일본에는 훈민정음을 닮은 고대 문자가 전해 내려온다. 이를 신대문자(神代文字)라 하는데 신들이 살던 시대의 문자로 그만큼 오래된 고대문자라는 뜻이다. 일본의 신대문자는 비교적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전해 내려온다. 신대문자를 살펴보면 글꼴은 물론이고 읽는 법까지도 우리의 훈민정음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의 우익 학자들은 훈민정음이 일본의 산대문자를 모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에서 신대문자로 쓰여 전하는 최초의 기록은 708년 것으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보다 무려 700년 이상 앞선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17-18세기 국수주의성향의 일본 학자들이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우리 학계에서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신대문자로 쓰여졌다는 문헌을 조사한 결과 그 내용이 거짓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가림토 문자가 신대문자의 원형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학자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

 논리적인 흐름으로 본다면 우리의 고대부터 전해진 가림토 문자가 존재했고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신대문자가 되었으며 세종대왕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몰론 관련 내용에 조작이나 거짓없이 모두 사실이라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학계의 대체적인 의견은 가림토 문자가 등장하는 환단고기 자체의 진위가 불투명하다는 점, 다른 정사에 가림토 문자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 발견된 유물 등 고고학 자료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가림토 문자를 고대의 문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훈민정음 운해"에서 신경준은 훈민정음 이전에 우리나라에는 옛날부터 민간에서 사용하는 글자가 있었는데 그 수가 다 갖추어지지 않고 그 모양에 일정한 규범이 없어 한 국가의 말을 적어내기에는 모자람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 조선에 한자와는 다른 별도의 글자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에서는 가림토 문자, 훈민정음, 신대문자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좀 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 한국 7대 불가사의(2007년, 이종호 저, 역사의아침, p315-324)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