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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가사의

청동기술의 극치, 다뉴세문경

청동기술의 극치, 다뉴세문경(잔무늬거울)


 1960년대 충청남도 논산에서 발견된 다뉴세문경(多紐細紋鏡, 잔무늬거울, 국보 141호)은 기원전 4세기 무렵 청동기 시대에 만든 거울로 청동기 시대의 불가사의로 꼽힌다. 청동기 제조 기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당대에 이만큼 뛰어난 청동 주조물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선조들의 청동기 문명이 최고 수준임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뉴세문경은 청동기 후기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유행했던 청동 거울로 다뉴란 끈으로 묶을 수 있는 고리(뉴)가 여러 개 있다는 뜻인데 거울 뒷면에 달려 있는 두세 개의 고리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세문이란 잔무늬를 뜻한다. 거울의 뒷면을 살펴보면, 동심원과 선, 삼각형, 사각형을 활용한 섬세한 무늬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뛰어난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국보 141호 다뉴세문경(국보 141호 다뉴세문경 - 출처 : 문화재청)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전기에 사용된 크기가 비교적 작은 다뉴조문경(거친무늬거울)도 많이 발굴되는데, 다뉴조문경은 기하학무늬의 구성이 정밀하지 못하여 줄무늬가 굵고 거칠며 만든 수법이 조잡하다. 대체로 다뉴조문경에서 다뉴세문경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뉴세문경은 중국 동북 지방과 러시아 연해주를 비롯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발견된 것이 있다. 지금까지 약 100여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도 논산에서 발견된 이 다뉴세문경은 중국보다 먼저 만들어졌으며 현존하는 유물 가운데 가장 크고 정교한 것이다.

 다뉴세문경의 크기는 지름이 21.2cm에 불과한데 이 좁은 공간에 무려 13,000개가 넘는 정교한 선이 새겨져 있다.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은 0.3mm에 불과하다. 선과 골의 굵기는 약 0.22mm, 골의 깊이는 0.07mm 정도이며 한곳도 빈틈없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현대의 기술을 이용하더라도 이 정도의 정밀성과 섬세함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만든다. 순수한 구리는 기계적 성질이 약하기 때문에 주석을 첨가하여 강도를 높인다. 주석의 비율이 28%일 때 강도가 가장 높지만 깨지기 쉽다. 주석의 함량이 30%에 이르면 백색을 띠는 백동이 되어 버린다. 다뉴세문경의 성분을 분석해 보면 26.7%의 주석이 포함되어 있는데 경도를 충분히 높이면서도 빛의 반사율을 좋게 하는 비율이라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오랜 경험으로 합금의 비율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다뉴세문경은 청동을 녹여 틀에 부어서 만들어낸 주물 작품이다. 주조 작업의 특성상 다뉴세문경과 같이 정교한 선이 살아 있는 주물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청동 주물을 만들 때 도안을 만들고 주물을 붓기 위한 거푸집을 만들어야 한다. 도안을 어디에다 어떻게 그렸는지 또 정밀한 거푸집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수수께끼이다.

 학자들은 다뉴세문경의 거푸집을 만드는 방법을 두 가지로 든다. 하나는 딱딱한 박달나무 등에 그림을 새기고 그 위에 입자가 아주 가는 점토를 눌러 무늬를 찍는 방법이다. 또 하나는 밀랍으로 원형을 만드는 것인데 일부 학자들은 밀랍을 자유자재로 이용해 청동거울을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안타깝게도 다뉴세문경의 거푸집이 발견된 것이 없어 정확한 것은 알기 어렵다.

 그동안 다뉴세문경을 복원하려는 노력은 수없이 시도되었으나 계속 실패를 거듭했다. 2006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의 곽동해 교수가 다뉴세문경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현대에도 만들기 어려운 기술을 청동기 시대에 가지고 있었다니 선조들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다.


참고자료 : 한국 7대 불가사의(2007년, 이종호 저, 역사의아침, p122-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