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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감각 현상

프로이트와 융 사이의 폴터가이스트 현상

프로이트와 융 사이의 폴터가이스트 현상

 정신분학계의 두 거장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융(Carl Jung)은 처음에는 스승과 제자 관계였다. 하지만 나중에 융은 프로이트가 낡아빠진 합리주의와 19세기 후반의 과학적 물질주의에 빠졌고 지나친 성적 해석과 결합되면서 극단적인 환원주의적 인과론으로 치우쳤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융이 프로이트와 결별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다.

프로이트와 칼융프로이트(앞줄 왼쪽)와 칼융(앞줄 오른쪽) - 출처 : Wikimedia Commons

 프로이트와 융은 1907년경 처음 만났는데 1909년경 프로이트는 융을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다. 하지만 서로 간에 묘한 갈등이 싹트고 있었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프로이트와 융의 결별에 영향을 끼친 여러 요인들 중에는 초심리적 현상에 대한 둘의 상당히 다른 시각차도 있었다. 둘 사이의 결별을 예고하는 듯한 사건이 1909년에 발생했다.

 융은 프로이트의 자택을 방문해 프로이트와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했다. 당시는 프로이트가 융을 몹시 총애하던 시기였다. 어느 날 프로이트가 융을 후계자이자 양자로 삼겠다고 선언했는데 그날 서재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중 심상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융이 프로이트에게 초심리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프로이트는 실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무시해버렸다. 이때 융은 눈의 망막이 마치 시뻘겋게 달군 쇠처럼 데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 순간 책장 쪽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둘 다 깜짝 놀랐는데, 융은 그 소리가 자신의 정신적 상태가 외부로 표면화되어 나타나는 현상(Catalytic Exteriorization Phenomenon)이라고 말했고, 프로이트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응대했다. 융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면서 다시 한번 그런 소리가 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정말 그의 말대로 됐다. 융이 그런 예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눈이 데인 것 같은 느낌을 다시 받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와 칼융,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 한 장면 - 출처 : 네이버 영화)

 프로이트가 이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프로이트의 서재에서 일어난 사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프로이트는 이를 유령의 두드림(Klopfgeisterspuk)현상이라 명명했는데 초심리학에서는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현상이라 부른다.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문이 저절로 열리거나 무거운 책장이 움직이며, 전구가 깨지는 등 물건이 파괴되기도 한다. 융은 이를 “정신적 상태가 외부로 표면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표현했으며 오늘날 초심리학에서도 그런 능력 소유자들의 내면 상태가 외부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융은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이런 현상을 자주 체험했는데 그런 현상의 주요 원인 인물이 어머니였다고 생각했다. 융은 일곱살 또는 여덟살 경 한밤중에 희미하게 빛을 내는 목없는 유령이 집 안을 떠도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고 한다.

칼 융(칼 융 - 출처 : Wikimedia Commons)

 의학도이던 23세 때는 그가 초상현상을 받아들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해 여름 집 안에 있던 호두나무로 만든 식탁이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면서 저절로 쪼개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융은 겨울이라면 혹시 몰라도 습한 여름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2주쯤 후에는 빵을 썬 후 서랍에 넣어둔 철제 칼이 큰 소리를 내면서 저절로 부서져 네 조각이 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음 날 융은 제련 전문가에게 조사를 의뢰했는데 제련 전문가는 확대경으로 조사해본 후 그 강철 칼을 누군가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거나 바위에 세게 쳐서 부쉈다면 모를까 저절로 폭발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일이 주로 융의 어머니가 일하던 거실과 주방에서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융은 외할머니가 뛰어난 영매였다고 회고했는데 그런 능력이 어머니를 통해 자기에게도 이어졌다고 믿었다. 또한 그런 능력이 외삼촌의 딸에게도 전해져 그녀가 뛰어난 영매가 됐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녀는 융이 종종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연 교령회의 영매로 활동했다.

 융이 스위스 제네바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테어도르 플러노이, 미국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 윌리엄 제임스처럼 초심리 현상에 매우 우호적이었던 학자들과 교류하였다. 특히 플러노이는 융이 몽유병, 초심리학, 종교심리학에 계속 흥미를 유지하도록 격려하기도 하였다.


참고자료 : 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2017년, 맹성렬 저, 김영사, p104-107, 117-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