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마인물형 토기 나온 금령총 94년만에 재발굴
일본인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가 1924년 조사해 기마인물형 토기와 금관을 찾아낸 신라 고분 금령총(金鈴塚)이 94년 만에 다시 발굴된다고 합니다. 2018. 6. 13.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문화재위원회 매장분과는 최근 회의에서 국립경주박물관이 신청한 경주 대릉원 일원(사적 제512호) 내 금령총 발굴 안건을 심의해 조건부 가결하였다고 합니다.
(금령총 금관 - 출처 : 연합뉴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5년부터 일제가 급하게 발굴한 신라 고분을 재발굴하고 있습니다. 일제 시대 때 이루어진 것들을 보면 발굴이라기보다는 도굴이라고 하는 표현이 맞겠죠. 오직 유물에만 관심을 가지고 발굴이 이루어져 제대로된 학술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박물관은 앞서 금관총을 조사해 '이사지왕도'(爾斯智王刀)라는 글자를 새긴 칼집을 발견하기도 했고, 서봉총 북분과 남분의 정확한 크기와 조성 방법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번에 조사하는 금령총은 6세기 초반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돌무지덧널무덤이라고 합니다. 부장품 가운데 특이한 금제 방울이 있어 '금령총'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금령총에서는 금관(보물 제338호)이 나왔고, 금제 허리띠와 장신구, 유리 용기, 칠기류, 마구, 토기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무덤 주인공 머리맡에서 발견된 기마인물형 토기(국보 제91호)는 신라 토기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유물입니다. 배모양 토기와 함께 나온 기마인물형 토기는 모두 두 점인데 모습으로 추정하여 귀족과 하인으로 구분하고 주인상, 하인상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기마인물형토기 - 출처 : 연합뉴스)
출토 당시에는 엉망으로 깨져 있었다고 합니다. 파편을 붙여 급하게 복원한 상태로 보관하다가 1977년에 보존처리를 진행해서 파편 서른여덟 개를 분해하고 이물질을 씻어내 다시 접합하였습니다.
이 유물은 신라인의 죽음에 관한 관념은 물론 당시 복식, 무기, 마구, 공예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 한민족과 훈제국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에게도 아주 흥미로운 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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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령총 금관은 높이 27㎝, 지름 15㎝로, 옥 장식이 없습니다. 신라 금관 가운데 가장 작고 장식이 단순한 편인데요, 학계에서는 금관과 각종 꾸미개의 크기가 작은 점으로 미뤄 금령총이 왕자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금령총은 일제강점기 발굴 당시에도 봉분이 파손돼 남북 길이 13m, 높이 3m인 반달형이었는데,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정확한 고분 규모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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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6/13/0200000000AKR20180613044700005.HTML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806132203132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