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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자연

[자연계 7대 불가사의] 세계 3대 미항, 리우 데 자네이루 항구

[자연계 7대 불가사의] 세계 3대 미항, 리우 데 자네이루 항구(Rio de Janeiro)

 포르투갈의 탐험가 곤살로 코엘료(Gonçalo Coelho)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새로운 세계로 항해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습니다. 1501년 8월 17일, 그는 우리가 지금 브라질이라고 부르는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그의 카라벨(작고 조종할 수 있는 범선) 3척은 남아메리카의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기 시작했습니다. 1502년 1월 1일, 배들은 거대한 강의 입구인 것처럼 보이는 해변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들이 발견한 만은 거대하고 이상한 모양의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유럽의 탐험가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들은 발견된 날을 기념하여 ‘1월의 강’이라는 의미의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라고 이름지었습니다.

리우 데 자네이루 전경, Rio de Janeiro리우 데 자네이루 전경(출처 : Pixabay)

 리우 데 자네이루의 입구는 실제로는 강이 아니라 내륙으로 20마일(32km)이나 뻗어있는 거대한 풍선 모양의 만입니다. 항구는 커다란 산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입구의 만에서 파르 디 아수카르 (Páo de Açúcar, Sugarloaf)라는 이름의 벌거벗은 화강암이 서 있습니다. 높이가 1,299피트(396m)에 달하며 원추형 설탕을 연상케 했습니다. 항구 근처의 가장 큰 산은 해발 2,300피트(700m)인 꼬르코바두(Corcovado, 꼽추(Hunchback))라고 불립니다. 만 자체는 130개의 섬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대부분이 물로 덮인 작은 언덕의 봉우리입니다.

 항구는 바다와 만나는 큰 산의 사슬(Serra do Mar)이 만든 결과입니다. 이 편마암과 화강암 봉우리는 해안을 따라 1,500마일에 걸쳐 있습니다. 이 곳이 장관을 이루는 것은 단단한 화강암과 부드러운 편마암의 상호 작용입니다. 바람, 비, 그리고 파도가 부드러운 편마암을 깎아내서 화강암 부분이 남아 가파른 절벽과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 냅니다.

 타모이오(Tamoio)는 이 지역에 거주한 원주민 중 한 사람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는 이름인 "바다의 팔"을 의미하는 과나바라(Guanabara)라고 불렀습니다. 유럽인들이 과나 바라 만의 가장자리를 따라 정착하려 했을 때 고난에 부딪혔습니다. 물 가장자리를 따라 평평한 땅이 없었으며 평평한 곳이라 해도 늪지대였기 때문입니다. 1555년에 500명의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가 지도자인 Nicolas Durand de Villegaignon의 이름을 딴 만의 여러 섬 중 하나에 요새를 지었습니다. 5년 후 이 요새는 포르투갈 해군의 포위 공격에 넘어졌고 프랑스는 도망쳤습니다. 요새가 있던 Villegaignon 섬은 오늘날 브라질 해군 학교의 본부입니다.

 1565년 3월 포르투갈인은 리우 데 자네이루에 자신들의 도시를 세우고 성 세바스찬을 기리기 위해 Sebastião do Rio de Janeiro라고 했습니다. 사탕수수 농업은 이 주변 지역의 주요 산업이었습니다. 사탕수수가 중요한 수출품이 되면서 항구는 유럽으로 향하는 선박으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불행히도 이 활동은 해적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1711년 프랑스 사략선(privateer)인 René Duguay-Trouin이 도시를 습격하고 몸값을 요구했습니다. 18세기 중반에 금이 내륙에서 발견되었고 유럽인들의 유입으로 리우 데 자네이루에는 개발 붐이 일었습니다. 1749년까지 도시의 인구는 24,000명으로 늘어났고 곧 포르투갈 식민지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설탕과 금은 19세기에 수출품으로서의 중요도가 감소하고 커피로 대체되었습니다. 나중에 면화와 고무가 선적되기 시작했습니다.

슈거로프 산, Sugarloaf Mountain슈거로프 산(출처 : Wikimedia Commons)

 이 도시는 브라질이 1816년에 독립 왕국이 되었고 1889년에 공화국이 되었을 때 수도로 남아있었습니다. 1960년에 수도는 국토의 가운데 있는 브라질리아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리우 데 자네이루는 남아메리카에서 인구 6백만이 넘는 2번째로 큰 도시이자 남미에서 3번째로 면적이 큰 도시입니다.

 도시와 항구는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합니다. 유명한 코파카바나(Copacabana)와 이파네마(Ipanema)를 비롯하여 수많은 멋진 해변이 있습니다. 도시의 남쪽 지역에서,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만들어진 바위인 Pedra da Gávea는 해발 2,762피트(842m) 높이로 서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 얼굴 모양으로 침식되어 바다로 수마일 가로질러 볼 수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다른 명소로는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는 Sugarloaf Mountain의 꼭대기가 있습니다. 정상에서 방문객들은 항구를 360도 전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카톨릭 성직자인 페드로 마리아 보스(Pedro Maria Boss)는 1850년에 도시 내에 대규모 종교 기념물을 지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당장에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1921년 리우의 카톨릭 모임은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기부금을 모으고 서명을 받기 위한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십자가 형태나 손에 지구를 든 예수의 동상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디자인이 고려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예수의 디자인이 선택되었습니다. 동상은 강화 콘크리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석으로 덧씌워져 Corcovado의 꼭대기에 세워졌습니다. 그것은 높이 130피트(40m), 좌우 팔의 길이는 98피트(30m)입니다. 1931년에 완공된 "구세주 그리스도(Christ the Redeemer)"라고 불리는 이 동상은 635톤에 달합니다. 항구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도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이 지역의 주요 명소이자 도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리우의 예수상, Christ the Redeemer예수상(출처 : Wikimedia Commons)

 리우 데 자네이루는 사순절 직전 봄에 열리는 카니발 축제로 유명합니다. 다채로운 의상을 입은 댄서와 음악을 특징으로 하는 퍼레이드는 도시의 여러 곳에서 열립니다. 가장 인기있는 행사 중 하나는 Cordão do Bola Preta로 리우 데 자네이루의 중심부에서 개최되며 하루 50만 명의 사람들이 참석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항구는 자연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불리고 있습니다. 1932년에 위대한 박물학자인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거대한 연극 무대처럼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고 적었습니다. "모든 형태와 모든 그늘은 유럽인이 자국에서 본 모든 것을 완벽하게 능가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할 것이다. 오페라 하우스나 위대한 극장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주 생각나게 한다."


참고자료 : http://www.unmuseum.org/7wonders/rio.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