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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신드롬

[UFO조사기구] 프로젝트 블루 북(Project Blue Book)

[UFO조사기구] 프로젝트 블루 북(Project Blue Book)

 1947년 6월 24일, 사업가이자 조종사인 케네스 아놀드 (Kenneth Arnold)는 워싱턴 근처 라이너(Rainer) 산에서 고속으로 날고 있는 9개의 평평한 원반형 항공기를 관찰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때 언론에서 처음으로 비행접시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다음 몇 달과 몇 년 동안 하늘에 있는 이상한 것들에 대한 수천 가지의 다른 관측이 미국 전역에서 보고되었습니다. 이것은 미 공군에게 딜레마를 안겨 주었습니다. 미국 땅 위를 과감하게 순항하는 알려지지 않은 항공기를 목격한 것에 대해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냉전 시대였던 당시 소련이나 적국의 이상한 항공 침략자였던 걸까요?

프로젝트 블루북, Project Blue Book프로젝트 블루북(출처 : science.howstuffworks.com)

 이 현상에 대한 공군의 초기 대응은 프로젝트 사인(Project Sign)의 창설이었습니다. 이후 이어진 프로젝트 그럿지와 프로젝트 블루북을 포함하여 공군은 22년 동안 UFO문제를 다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비록 진실을 감추기 위해 고안된 은폐 노력이었지만 말입니다.

 프로젝트 사인과 프로젝트 그럿지가 별다른 결과 없이 해체된 후에 프로젝트 블루북이 창설되었습니다. 1952년 초 러펠트(Edward J. Ruppelt)의 지시에 따라 그럿지가 프로젝트 블루북(Project Blue Book)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프로젝트 사인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 러펠트는 당시 블루북의 가장 개방적인 사령관 중 한명으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프로젝트가 그의 명령 아래 운영되는 것은 가장 생산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러펠트는 언론에서 사용된 비행접시나 비행디스크라는 대중적인 용어를 대체하기 위해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그는 UFO에 대한 보고 프로세스를 능률화하기 위해 데이터베이스에 정보를 수집하였는데 이를 위해 표준보고 양식을 만들었습니다. 러펠트는 통계적 방법을 적용하여 UFO현상을 설명하기를 원했습니다.

 통계적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프로젝트 블루북 특별보고서 제 14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연구에 포함된 3,200개의 보고서 중 69%는 대상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생각되었습니다. 9%는 결론을 내리기에 정보가 불충분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명확한 사례 중 1.5%는 조작된 것으로 분류했고 8%는 가짜 정보를 포함하는 기타 사례에 속했습니다. 22%가 알 수 없음으로 표시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사건에 관한 정보가 많을수록 이 부류에 속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이것은 회의론자들이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였습니다.

 천문학자인 알렌 하이네크(J. Allen Hynek) 박사는 원래 프로젝트 사인의 과학 컨설턴트로 고용되었지만 블루북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했습니다. 당시 오하이오 주립 대학의 물리학 및 천문학과에 있던 하이네크는 처음에는 UFO 회의론자였습니다. 그는 모든 보고서가 날조되었으며, 오판이나 오해, 자연적 원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UFO라는 주제가 우습다고 생각하면서 이러한 일시적 유행이 곧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훗날 하이네크는 프로젝트 블루북 초창기에 자신의 역할이 UFO를 부정적으로 파헤치는 것이었음을 인정했습니다. 때로는 합리적인 것 이상으로 이용가능한 자연현상을 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1966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목격자들이 늪지 가스(Swamp Gas)를 비행접시로 잘못 판단한 것이라는 그의 선언은 전국 언론으로부터 조롱을 받았습니다.

에드워드 러펠트, 프로젝트 블루 북, Edward J. Ruppelt에드워드 러펠트(출처 : obscurantist.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펠트는 하이네크 박사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했습니다. “하이네크 박사는 UFO 프로젝트에서 일하면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과학자 중 한 명이었으며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는 과학자들 중 몇몇이 했던 2가지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받기도 전에 답을 주거나 과학 분야의 업적에 대해 즉각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하이네크 박사도 러펠트가 올바른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를 존경했습니다. 러펠트가 1953년에 프로젝트를 떠난 후, 하이네크 박사는 블루북이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 연구가 거의 수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면서 홍보 장치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1952년 UFO보고서 발간은 CIA가 물리학자 하워드 퍼시 로버트슨(Howard Percy Robertson)의 지시에 따라 과학자 패널을 소집하게 만들었습니다. 패널은 4일 동안 12시간 동안 만났고 러펠트와 하이네크, UFO조사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이 흥미로운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패널의 최종 보고서에는 UFO사례의 90%는 기상, 천문 또는 자연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지난 10%는 조사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경우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조사만 충분하다면 설명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UFO에 의해 제기된 국가 안보에 대한 유일한 위협은 대중응로부터 들어오는 많은 잘못된 보고가 국방부의 통신 채널을 점유하면서 실질적인 위협에 대한 보고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대중의 관심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UFO를 파헤치고 수수께끼같은 분위기를 없애기 위한 홍보 활동을 시작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민간인 UFO 연구가들이 파괴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으므로 그들을 감시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프로젝트 블루북은 곧 자원의 대부분을 빼앗겼고 파문을 당한 루펠트는 떠났습니다. 프로젝트의 나머지 기간 대부분은 UFO 보고를 조사하기보다는 잘못된 UFO 보고에 대해서만 행동을 취했습니다. 로버트 J. 프렌드(Robert J. Friend) 소령이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1958년과 1963년 사이에 짧은 기간 동안 이러한 추세를 되돌리고 UFO 조사에 대해 더 과학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한된 예산과 비협조로 인해 그의 노력은 좌절되었습니다.

프로젝트 블루북 보고서프로젝트 블루북 보고서(출처 : carterdesignmedia.com)

 1966년 콘돈 위원회(Condon Committee, 물리학자이자 미국 과학 진흥 협회의 한 사람이었던 Dr. Edward U. Condon의 지시 하에 만들어짐)는 블루북의 작업을 검토하고 종료하도록 제안했습니다. 최종 보고서에서 콘돈은 과학적 지식에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향후 연구가 불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콘돈은 또한 "우리 태양계 밖에 있는 지능형 생명체가 앞으로 1만년 내에 지구를 방문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습니다. 태양계 외부의 생명과 기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 추정치는 상당한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블루북이 고용한 민간 컨설턴트였던 하이네크 박사는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하이네크는 공적으로는 UFO에 대한 공군의 입장에 동의하면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사례를 조사한 후에 자신의 의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어떠한 조사도 없이 모든 보고서를 거부하는 공군의 습관은 그의 과학적 본성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하이네크 박사는 1973년 UFO연구센터(CUFOS)라는 기관을 구성하여 다른 연구원들과 함께 조사를 계속하기로 결정했습니다. CUFOS가 조사한 수천 개의 UFO 보고서 중 약 80%가 설명될 수 있고 20%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프로젝트 블루북이 1969년에 종료된 이후, 현재는 모든 파일이 기밀 해제되어 공개되었습니다. 블루북과 그 전임자들은 그 운영 과정에서 미확인된 것으로 밝혀진 701건을 포함하여 12,618건을 조사하였습니다. 이 기록은 현재 국가기록원(National Archives)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프로젝트 블루북이 보유하지 않은 다른 UFO 관련 문서는 기밀로 분류된 채로 남아 있습니다. 민간 UFO 단체들은 이 파일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불행하게도, 목격자들을 모략하고 보고서의 신용을 훼손하려는 블루북의 시도는 프로젝트 종료 후에도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거짓말쟁이라는 딱지에 대한 목격자의 두려움 때문에 UFO의 유효한 보고가 얼마나 많이 억눌려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참고자료 : http://www.unmuseum.org/bluebook.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