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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신드롬

[UFO조사기구] 규명보다 은폐에 치중한 프로젝트 그럿지(Project Grudge)

[UFO조사기구] 규명보다 은폐에 치중한 프로젝트 그럿지(Project Grudge)

 프로젝트 사인의 최종 보고서가 작성될 당시에 UFO현상은 더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 당국의 시선은 더욱 냉랭해져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사인에 참여했던 루펠트 대위의 증언에 따르면 프로젝트 사인의 조사업무에 박차를 가하려던 찰나에 미 공군 관계자에 의해 조사가 갑자기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UFO의 외계 기원설에 관심을 기울이던 사람들이 모두 물러나고 새로운 조직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로는 모든 UFO 현상이 착각이나 조작, 환각에 의한 것이라고 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진용을 갖추면서 조사기구의 명칭도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프로젝트 그럿지, Project Grudge프로젝트 그럿지(출처 : thinkaboutit-ufos.com)

1948년 12월 16일, 미 공군 연구개발국장은 프로젝트 사인을 취소해 버리고 프로젝트 그럿지(Project Grudge)로 대체할 것을 전격적으로 지시했습니다. 새 조사기구의 임무도 UFO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서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접수된 모든 보고를 어떤 방식으로든 명쾌하게 설명하려 하였습니다.

 이는 UFO현상을 철저히 조사해 보니 모두 설명이 가능한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일반에게 확신시켜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전의 프로젝트 사인이 조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였던 반면에 프로젝트 그럿지는 이러한 순수한 연구 방향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미 공군의 이러한 의도에 따라 중간중간 드러나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사실까지 인정하지 않았으며 시민들의 관심을 억제하기 위한 캠페인까지 벌였다고 합니다. 미 공군은 이러한 작업을 충실히 진행시켜 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론 거기에 선뜻 참여해 줄 협력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바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공상과학작가 시드니 쉘렛이었습니다.

 쉘렛은 미 공군으로부터 자료를 건네받아 각종 일간지에 기사를 기고하면서 프로젝트 그럿지의 충실한 홍보를 도맡았습니다. 그가 일간지에 실은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목격자들이 보았다고 주장하는 미확인 비행물체는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태양과 별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상한 감정으로 인해 발생한 일시적인 혼동이나 착각이다.

 아직까지 목격된 몇몇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한 사례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 그것은 너무도 오랫동안 하나의 광원만 주시한 탓에 빚어진 현기증이거나 자기 최면 증세의 산물인 것 같다.

 20세기가 양산한 원자폭탄의 가공할 위험은 나날이 증대되고, 환상만은 아닌 우주 여행에 대한 가능성은 하루하루 높아간다.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이 혼재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20세기 문명인들에게 일시적으로 비춰지는 정신 착란은 크게 우려할 바가 못 된다. 화성인을 만났다고 아우성치거나 비행접시를 보았다고 몸부림치는 그들의 행동을 심각한 질병으로 여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쫓기는 삶 속에서 그들이 그 정도의 환상을 갖는다는 것은 정상인에겐 당연히 나타날 수 있는 문명 성장의 과도기적인 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 그럿지 보고서, Project Grudge Report프로젝트 그럿지 보고서(출처 : astronomyufo.com)

 미 공군 당국은 그의 활동으로 매우 흡족했고 UFO에 대한 열기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으로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쉘렛의 기고가 끝나자마자 UFO에 대한 목격 사례가 물밀듯이 쇄도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던 것입니다. 이런 결과에 미 공군 측은 적잖이 당황했다고 합니다.

 미 공군은 이러한 반응에 대해 쉘렛이 신문에 기고를 하면서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 내용인 ‘UFO에 대해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한가지 쉘렛의 기고문이 너무 한쪽으로만 편중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시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의 의문을 강하게 만드는 결과를 자초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미 공군은 자신들의 경솔한 행동이 오히려 대중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역효과를 불러왔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 공군은 최후의 방어 수단으로 UFO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꿔 버렸습니다.

 미 공군은 겉으로는 단호하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UFO현상에 대한 조사를 계속해나갔습니다. 일례로 1951년까지 녹색 불덩어리 현상(Green Fireballs)에 대해 조사를 벌였습니다. 녹색 불덩어리는 멀리서 보이는 모습은 유성과 흡사했습니다. 하지만 비행하는 동안 발산하는 밝은 녹색빛과 수평적인 비행패턴, 느린 속도, 한정된 지역에서만 목격되는 점 등은 유성과 달랐습니다.

 녹색 불덩어리 사건은 미 공군 캠브리지 연구소의 주도하에 수행되었는데 그들은 이를 프로젝트 트윙클(Project Twinkle)이라고 불렀습니다. 미 공군은 1951년 12월 27일까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녹색 불덩어리 찾는 작업을 중단하였습니다.

 프로젝트 그럿지는 공식적인 조사를 시작하고 6개월이 흐른 1949년 8월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최종 보고서에는 그들이 조사한 총 244건의 목격 사례가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천문기상현상이거나 천문현상 외 설명가능한 현상(항공기, 기구, 반사광, 새떼 등), 설명 불가 등으로 분류하였습니다.

 그러나 설명이 불가능한 보고에 대해 심리적 요인을 결부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적고 있습니다. 목격자들의 심리적 요인을 분석하면 완벽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로젝트 그럿지의 최종 보고서는 프로젝트 사인과는 상반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프로젝트 그럿지를 통해 미 공군이 두려워한 것은 UFO 자체가 아니라 UFO에 휘말릴 대중의 심리였을 수도 있습니다. 적국이 이를 교묘히 이용한 심리적 전술을 펼 가능성이 많았고 이것이 현실이라면 더 큰 대중적 소동이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 그럿지에 참여한 위원들은 미 공군의 UFO 조사 활동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가가 매일같이 UFO를 조사하고 다니는 것이 대중에게 더 큰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결국 프로젝트 그럿지는 1949년 12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종결을 발표하면서 1951년 중반까지 외부적으로 거의 활동을 중단하였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UFO에 대한 목격 사례를 모으고 분류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참고자료 : 50년 전 지구에 온 외계인(1997년, 송은영 저, 새날, 137-142, 144-147)

충격 UFO 보고서 (1996년, 허영식 저, 제삼기획, p280-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