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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경주 황용동 절터서 통일신라 금동귀면 첫 출토 경주 황용동 황용사 절터서 통일신라 금동귀면 첫 출토 불교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청과 함께 진행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경주 황용사터에서 지난 7월 조사를 실시한 결과 탑 주변에서 국내 최초로 금동귀면을 찾았다고 합니다. 경북 경주 동쪽에 있는 황용동에 위치한 황용사(黃龍寺) 절터에서 금속판 일부를 도려내는 투조(透彫) 기법으로 만든 금동귀면이 출토된 것입니다. 금동귀면은 높이가 15cm정도로 성인 손바닥 정도의 크기입니다. 입에는 고리가 달려있고 입체감이 살아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국내엣 유사한 사례가 없어 현재로서는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네요. 단순한 장식품일수도 있고 고리에 무언가를 걸었던 것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미술사학계에서는 조사 지역의 탑을 8-9세기 작품으로 보는데 금동귀면도 비슷한 시.. 더보기
경주 동궁 석조수로는 소화전, 4초만에 물이 흐른 방화수로 경주 동궁 석조수로는 소화전, 4초만에 물이 흐른 방화수로 신라 문무왕 19년(679)에 조성된 경주 월지 옆 동궁(東宮)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정교한 수로(水路)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이들이 막연하게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 월지로 흘려보내는 배수로로 추정했던 이 수로가 통일신라판 대규모 소화전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불교고고학을 전공한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은 신라사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신라사학보'에 게재한 논문 '신라 동궁지 석조수로(石造水路)의 기능에 대한 고찰'에서 동궁터 수로를 소방시설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였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석조수로 길이는 107m정도이며 너비가 29∼30㎝, 높이는 14∼15㎝입니다. 길이가 1.2∼2.4m인 다양한 돌을 .. 더보기
조화의 극치, 석굴암 조화의 극치, 석굴암 경주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석굴암은 세계 불교 미술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예술품이다. 본존불상의 고요한 모습, 가늘게 뜬 눈, 온화한 눈썹, 미간에 서려있는 슬기, 금방이라도 설법할 듯 자비로운 입 등 깊고 숭고한 내면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751년, 신라 경덕왕 때 재상 김대성에 의해 창건된 석굴암은 해발 745m 지점에서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데 석불의 정면에는 문무왕 수중왕릉이 보인다. 아침해가 솟아오르면 불상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오르고 새하얀 불상에 햇살이 반사되면 석굴 속은 마치 반사광을 받은 듯 신비에 젖는다. 경덕왕은 신라 35대의 임금으로 선왕인 34대 효성왕의 동생이다. 경덕왕대는 삼국통일이 완성되어 국내외의 혼란이 수습되고 안정을 찾아 평화와 풍요를 구.. 더보기
첨성대는 천문대였을까 첨성대는 정말 천문대였을까 경주시 인왕동에 자리잡은 국보 제 31호 첨성대(瞻星臺).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632-647, 신라 27대 왕) 때 건립된 것이라 한다. 높이 9.17m에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이다. 첨성대의 용도에 대한 여러 학설이 제기되었지만 현재는 천문대라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첨성대에서 어떤 방법으로 별을 관측하였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첨성대의 전체적인 외형을 보면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각형의 2중 기단을 쌓고 지름이 일정하지 않은 원주형으로 돌려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꼭대기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돌을 엮어 놓았다. 각 단의 높이는 약 30cm이고 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