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는 정말 천문대였을까
경주시 인왕동에 자리잡은 국보 제 31호 첨성대(瞻星臺).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632-647, 신라 27대 왕) 때 건립된 것이라 한다. 높이 9.17m에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이다. 첨성대의 용도에 대한 여러 학설이 제기되었지만 현재는 천문대라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첨성대에서 어떤 방법으로 별을 관측하였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첨성대의 전체적인 외형을 보면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각형의 2중 기단을 쌓고 지름이 일정하지 않은 원주형으로 돌려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꼭대기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돌을 엮어 놓았다. 각 단의 높이는 약 30cm이고 화강암 하나하나가 같은 형태이지만 각 단을 이루는 원형의 지름이 점차 줄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다.
13단과 15단의 중간에 남쪽으로 한 변이 1m인 정사각형 창이 있다. 그 아래로 사다리를 걸었으리라 추측되는 흔적이 남아 있어 이 곳을 통해 출입하면서 별을 관측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몸체 안쪽 12단까지 흙이 채워져 있고 19단~20단과 25단~26단의 두 곳에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장대석(長大石)이 놓여 있다. 27단의 반원에는 판석(板石)이 있고, 맞은편에는 판목(板木)을 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자리가 있다.
첨성대를 구축할 때 쓰인 돌의 개수가 362개라고 하는데 이것은 음력으로 계산한 1년의 날 수와 일치한다. 원주형으로 쌓은 27단에다 맨 위에 井자 모양의 돌까지 28단은 별자리 28숙(宿)을 상징한다. 첨성대 중간의 창 아래위 12단은 12달, 24절기를 의미한다고 한다. 꼭대기의 井자 모양의 돌은 신라 자오선의 표준이 되었으며 각 면이 정확히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킨다. 중간의 창문은 정확히 남쪽을 향하고 있어 춘분과 추분 때에 햇빛이 첨성대 밑바닥까지 비쳤으며 하지와 동지 때는 아랫부분에서 햇빛이 사라져 춘하추동을 나누는 분점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첨성대는 우주를 상징하고 과학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과 원형을 적절히 배합해 안정감 있고 온순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꼭대기의 정자석의 길이가 기단부의 절반으로 된 것도 안정감을 표현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첨성대가 천문대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첨성대의 모양 때문이다. 높이 9.17m에 윗지름 2.85m에 불과한 건물에서 하늘을 관측하는 역할을 다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생긴다. 그 정도 높이에서나 땅 위에서 관측하는 것이나 별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정말 하늘을 관측하려는 목적이었다면 높은 산꼭대기에 만들었어야 옳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올라가는 입구가 아래에서부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쪽에 있는 창문을 통해 오르내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출입구가 이렇게 불편해서 어떻게 제대로 관측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첨성대가 천문대가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 천문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첨성대가 별자리의 움직임을 통해 국가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는 점성술용(占星術用) 시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이나 평양의 첨성단처럼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의 기능을 지녔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또 첨성대가 불교의 우주관을 반영한 종교적 목적의 제단이라는 주장이 있다. 첨성대의 모양이 불교에서 말하는 상상의 산인 수미산(須彌山)을 그대로 빼닮았고 당시 융성했던 불교를 나타내기 위한 상징물 제작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추측에 근거하고 있다. 수미산은 우주의 중심을 이루는 거대한 산으로 중심에 금륜이 있으며 주위를 8개의 산맥이 동심원을 이루며 둘러싸고 있다는 상상 속의 산이다.
첨성대가 해 그림자 길이를 재기 위한 규표(圭表)로서의 용도였다는 주장도 있었고, 정교한 기하학적 구조로부터 수학적인 비례 등을 나타내기 위한 수학적 상징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선덕여왕이 은밀하게 신하들을 만나던 장소라는 주장과 외계인이 남겨놓은 기념비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첨성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으나 아직 어떠한 합의점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다만 원래 제단이 있었던 자리에 첨성대가 있었다는 점이나 신라의 천문관측 기록 등으로 미루어 보아 첨성대는 천문관측 외에도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던 곳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대적인 의미의 천문대와는 다른 성격의 건축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 모진 비바람을 견디고 그 자리를 지켜온 첨성대는 역학적 안정성, 미학적 곡선미 등을 두루 갖춘 온 세계의 소중한 문화 유산으로써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풀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첨성대를 보존하기 위한 정밀조사와 첨성대의 건립배경을 규명하기 위한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