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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신드롬

나치 독일의 UFO개발

나치 독일의 UFO개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지구상에서 최고의 지식과 과학 기술을 지니고 있던 나라는 바로 나치 독일이었다. 전후 미국과 소련은 앞다투어 독일의 과학자들을 데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이들의 온갖 실험 결과가 이후의 과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던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5백명에 달하는 기술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던 나치 독일의 V로켓 개발자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를 들 수 있다.

 베를린을 함락시킨 연합군이 비밀 공장들을 샅샅이 뒤지며 찾아내려 했던 것이 바로 이 'V-7'이었다. 'V-7'이란 나치 독일의 초비밀 무기로 하늘을 나는 원반이었다. 나치의 과학력의 전부가 이것의 개발로 결집되었다고 하는데 단순히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8년 5월, 당시 서독에서 개최된 과학박람회에서 누군가가 "폭발"이라는 제목의 과학 기술 신문을 돌리고 있었다. 이 신문에는 본래의 주재와는 동떨어진 두 종류의 기사가 있었다. 하나는 '남극권의 장래에 관한 과학적 전망'이라는 기사였고 또 다른 하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원반형 비행기'라는 기사였다.

 이 기사에서 원반형 비행기의 세부 스케치가 첨부되어 있었지만 설계자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았다. 당시 서독의 정부 당국은 이것이 공표되더라도 안전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기사를 쓴 사람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 비행기의 발명자가 민간이든 정부기관이든 간에 관계없이 가까운 곳에 있는 특허신청소에 등록되어 곧바로 극비 취급을 받아 설계자의 손을 떠나게 되었고 히틀러 직속의 연구기관으로 보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치 독일의 UFO개발

 신문에 실린 설계도면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것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명칭들이 기록되어 있다. 컴퓨터, 전자기 모터, 레이저 레이더 등 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이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이와 같은 것을 개발할 만한 기술이 있었을까? 도면 한 장으로 이 원반형 비행기의 실제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나머지 여러 도면들이 독일 정부에 의해 처분되었거나 어딘가에 은닉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사에 의하면 베를린이 함락되기 직전 당시의 SS(나치 친위대) 장관 겸 경찰장관이던 하인리히 히믈러의 지휘를 받고 있던 연구기관에 의해 그 증거의 대부분이 인멸되었거나 어둠 속으로 매장되었다고 한다. 이 비밀 무기가 어떻게 되었다는 내용을 실은 기사는 더 이상 볼 수 없었으며 이 신문도 "제1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어 버렸다.

 기록이나 증언에 의하면 히틀러의 V-7계획은 1930년대 후반부터 갑작스럽게 연구가 개시된 것으로 보인다. 천재 과학자인 빅터 쇼베르거의 지휘하에 튜링겐 등 3개의 지하 비밀 연구소에서 중력을 제어해 비행할 수 있는 원반 비행체의 개발이 추진되었으나 얼마 후 이 연구소의 비밀이 미국과 영국의 정보부에 알려졌다. 그래서 히틀러는 그 연구를 대외적으로는 없던 일로 하고 비밀리에 추진하는 동시에 거짓위장을 위해 제트 엔진의 추진력에 의한 원반 개발도 착수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쇼베르거의 연구는 프라하의 노스트 홀에 있는 BMW공장 등 몇 군데로 분산되었으며 우수한 과학자들이 총집결되었다.

쇼베르거 박사는 오스트리아의 빈에 있는 카틀사의 연구소에서 획기적인 초전도 모터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체에 사용할 합금의 완성이 1944년으로 늦춰지면서 모터 개발은 빛이 바랬다. 주동력으로 초전도 모터가 설치되고 전자파 추진으로 비행한다는 시험 제작 비행기는 '비행모자(Flying Hat)'라고 불렸으며 최종적으로 지름 40~70m급의 것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1945년 2월 19일, 튜링겐 지하 연구소에서 제작된 무인 비행기의 실험 비행이 실시되었다. 비록 3분간의 짧은 비행이었지만 이 비행기는 고도 5,000m까지 상승을 하였고 시속 2,200km로 비행하였다. 또한 이 비행기의 성능은 경이적인 것이어서 공중 정지나 전후진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또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날카로운 각도의 회전을 할 수 있었으며 고속으로 비행할 때는 기체가 비스듬히 기울어져 날 수도 있었다고 한다. V-7은 독일 치하인 폴란드의 베네뮨데에 있는 지하 비밀공장에서 최종 완성 단계에 들어가 있었으나 1945년 5월에 베를린이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행방이 묘연해졌다.

나치 독일의 UFO개발

 항공기 설계기사이자 공군 대위였던 루돌프 슈라이버는 1941년 봄, 원반형 비행기 설계를 완료했으며 1942년에는 이 장치에 대한 시험 비행을 실시했다. 그리고 1943년 8월에 슈라이버는 신뢰할 만한 세 명의 동료들과 함께 하늘을 나는 원반의 실물 크기 모형을 조립했다. 그러나 다음 해 여름에 그는 프라하 근교의 BMW공장에서 가스 터빈 엔진을 제트 추진 장치로 바꾼 모델로 설계를 변경했다. 슈라이버의 말에 따르면 1944년 초 조립된 원반형 비행기는 1945년 4월에 실험 비행을 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독일에 대한 연합군의 침공이 위협적인 상황으로 변해감으로 인해 완성된 1호기까지 파괴해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슈라이버는 1950년대 말에 사망했지만 당시의 일기와 원반형 비행기의 스케치 및 자료가 발견되어 그와 주변의 연구 내용이 다소나마 밝혀지게 되었다.

 원반형 항공기의 개발 계획은 원래 하벨모르와 미테라는 독일의 전문가, 그리고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인 베론소 박사의 3인에 의해 제안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벨모르와 슈라이버는 조종석을 중심으로 날개가 회전하는 '가동익형(可動翼型) 원반 비행기'의 설계를 추진하고 있었다. 보고에 따르면 원반 비행기는 지름이 42m, 바닥에서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32m 정도였다. 최고로 올라갈 수 있는 고도는 13만 2천m였으며 최고 속도는 시속 2천km였다고 한다.

 연합군 측은 V-7의 행방을 필사적으로 찾았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나치는 재빨리 시험 비행기와 설계도 등을 파기 또는 파괴해 버린 것으로 보인다. 몇몇 정보에 따르면 V-7의 신형 엔진의 시험을 마치자 독일의 과학자들은 이것을 기체로부터 분리시켜 1941년 이래로 건설 작업을 계속하고 있던 남극의 비밀 기지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또한 V-7 제조 작업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은 모두 종전 직후 가스실에서 사라져 갔다고 한다. 이 비행기를 개발하는데 중심 역할을 했던 쇼베르거 박사는 미국으로 가서 캐나다 항공기 회사인 AVRO사와 미 공군의 공동 개발 계획이었던 인공 원반 계획이라 불리는 원반형 비행기의 개발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슈라이버와 마찬가지로 1950년대 말의 어느 날, 시카고의 길가에서 타살된 채 발견되었다.

 1천만 달러를 투입해 시험 제작된 'AV-9형'이라는 미국의 원반형 비행기는 실험 비행 단계에서 겨우 1.2m밖에 떠오르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원반형 비행기 개발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있다.


참고 자료 : UFO와 초자연 X파일(1998년, 나미키 신이치로 저, 김경진,안홍균 역, 창해,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