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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믿음

신탁(神託), 신의 계시인가?

신탁(神託, Oracle), 신의 계시인가?

 서양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을 할 때 신전을 찾아가 신에게 그 결과를 묻는 대목을 자주 볼 수 있다. 신탁(神託)이란 인간이 판단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신에게 물어보는 것을 말한다.

 종교의 원시적 단계에서 볼 수 있는 선택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별을 보고 점을 치거나 꿈을 해몽하는 방법이 있고 새의 나는 모양을 보는 새점과 짐승의 뼈를 태우거나 제물로 바친 짐승의 내장 헝태를 보고 판단하는 점, 죽은 자를 이용하는 방법, 제비를 뽑는 방법 등이 있다.

 신탁의 내용은 결혼이나 임신, 사업의 성공 등 개인적인 문제를 비롯하여 외교문제나 전쟁 등 국가대사와 관련된 문제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였다. 그리스에서는 디디마, 클라로스, 테베 등 각지에서 아폴론 신의 신탁이 성행하였고 그 중에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은 멀리 외국에서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였다. 도도나와 올림피아 등에서는 제우스신의 신탁, 에피다우로스에서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신탁 등이 유명하였다.

신탁(神託, Oracle), 무녀(巫女), 델포이 시빌레델포이의 시빌레

 신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신과 사람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무녀(巫女)였다. 그들은 신탁을 알리는 일만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로 대부분이 여성이었지만 남성들도 간혹 있었다. 신탁이 있는 날 무녀들은 목욕재계하고 신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놓여진 금의자에 앉는다. 곧 의뢰자가 가져 온 질문이 무녀에게 전달되고 무녀는 신으로부터 답을 받는 동안 최면 상태가 된다. 무녀는 몸을 떨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노래를 부르고 승려는 그것을 해석하여 의뢰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시의 형식으로 전달한다. 신탁은 그 뜻이 모호하거나 은유적이고 궤변에 가까운 것이 많았으므로 결국 질문자의 판단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많았다.

 처음에 무녀들은 모두가 젊은 처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어느 날 한 의뢰자가 아름다운 무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는 신전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그 무녀를 범하게 된다. 신전에서는 대비책을 강구하기 위해 회의가 열렸고 결국 무녀들을 처녀로 구성하는 한 남자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젊은 여자들이 모두 50대의 교육받지 못한 여성들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교육을 받은 여자들은 무녀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무녀의 역할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무녀들은 신전에서 신탁을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으며 신의 뜻은 교육을 받은 승려들의 의도대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이 내용이 신탁이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받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무녀들은 어떻게 최면상태(혹은 환각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당시 이러한 최면 상태는 신들만이 소유한 커다란 특권이라 생각되었으며 최면상태에 빠진 무녀는 신들과 접촉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무녀들이 의뢰자 앞에서 자연스럽게 최면에 빠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단순히 무녀들이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였다고도 하나 그다지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요즘과 같이 아편이나 환각제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최면상태의 비밀은 바로 신전의 위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델포이의 신전은 의도적으로 지면의 갈라진 틈 위에 세웠다. 이 곳에 질식성 가스인 메탄이 새어 나왔다고 하는데 무녀들은 이 메탄을 마시고 경련을 일으켰다고 한다. 유명한 도도나 신전은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온천 위에 세워졌다. 이산화탄소는 무녀들을 멍하니 졸리게 만들었을 것이고 의뢰자의 질문에 뜻 모를 답을 중얼거리게 되었다. 결국 승려들이 의뢰자가 원하는 대답을 꾸며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승려와 의뢰자는 최면상태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유명세가 덜한 신전에서는 무녀들이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신탁을 실현하였다고도 하나 분명하지는 않다.

 한편 에피다우로스에 있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은 주로 병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병자는 신전 안에서 자면서 기적의 치유를 소망했고 실제로 많은 환자들이 완쾌되어 신전을 떠났다고 한다. 이 신전의 승려들 중에는 의료 전문가가 많았다는 점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신전마다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명확히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참고 자료 : 세계의 불가사의 21가지(1998년, 이종호 저, 새로운 사람들, 26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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