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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믿음

파티마 제3의 예언

파티마 제3의 예언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파티마(Fatima)에 성모 마리아가 눈부신 빛을 뿜으며 출현하여 이 마을에 사는 세 어린이 루치아(10세), 야신타(7세), 프란시스코(9세)에게 나타났다. 성모 마리아는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던 세 어린이에게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 같은 곳을 찾아오라고 말해 인류 운명과 직결된 세 가지의 대 예언을 전해주었다. 흰 옷을 입은 영롱한 마리아의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약 7만명 가량 되는데 10월 13일에는 소문을 전해들은 5만여명의 순례자들이 모였다.

파티마 제3의 예언

 이것이 성모 마리아의 파티마 계시 또는 파티마 예언이라 불리는 사건의 전말이다. 제 1의 예언은 러시아의 공산주의에 관한 것이었다. 러시아가 전 세계에 큰 잘못을 저지른 후 회개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러시아의 공산화로 전세계에 전쟁을 퍼뜨린 다음 공산주의가 붕괴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제 2의 예언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해석되는 지옥의 모습으로 1차 대전 이후 더욱 참혹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두 예언은 1942년 교황청에 의해서 공표되었으나 파티마 제 3의 예언은 성모 마리아의 뜻에 따라 발표되지 않고 있었다.

 제 3의 예언은 교황청 내부에서도 교황과 최측근들에만 회람되었다. 이 예언을 처음으로 열어본 사람은 비오 12세 교황으로 1958년 가을의 일이었다. 그는 1963년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그 비밀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이 전문을 읽은 사람은 바오로 6세(1963~1978년 재위)인데 그는 기록을 개봉하여 보고는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하마터면 의자에서 굴러 떨어져 실신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제 3의 예언은 2000년 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포르투갈 파티마를 방문한 자리에서 공개되었다. 마리아의 계시를 받은 뒤 2년 후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난 양치기 남매 프란시스코 마르토와 여동생 야신타(성모 마리아의 예언에 의해 사망했다고 함)를 시복(諡福)하는 자리였다. 시복은 죽은 사람의 신앙과 덕성을 인정해 성인의 바로 전 단계인 복자(福子)의 반열에 올리는 것이다. 교황청이 어린아이를 그것도 순교하지 않은 사람을 시복하기는 처음이었다.

 60만명의 참배객들이 모인 가운데 거행된 시복행사에서 로마 교황청 국무장관인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은 파티마 제 3예언의 내용을 공개했다. 다음은 교황청의 발표문이다.

파티마 제3의 예언

 교황 성하는 파티마 방문에 즈음하여 파티마의 비밀을 공개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교황의 이번 방문은 당시 성모 마리아의 계시를 들은 두 명의 어린 양치기에 대한 시복을 위해서입니다. 교황은 마리아께서 자신을 보호하심에 대해 성도들이 감사드리기를 희망하셨습니다. 마리아의 보호하심은 세번째 계시와 관련이 있습니다.

 세번째 계시는 성경이 미래의 일들을 구체적으로 적지 않고 일련의 사건의 배경을 상징적으로 적는 것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계시의 내용은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앞서 공개된 파티마의 비밀은 교회와 기독교도에 대한 무신론 체제의 전쟁과 신앙의 증인들이 두번째 천년의 막바지에서 쓰라린 고통을 당하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20세기말 십자가의 도였습니다.

 어린 양치기들의 해석에 따르면 마지막 계시 중 모든 신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흰 옷을 입은 사제는 바로 교황입니다. 그는 순교한 주교와 신부들의 시신 속에서 십자가에 보다 가까이 가려다 총에 맞아 땅에 쓰러졌습니다.

 지난 1981년 5월 13일 피격 당시 교황은 총탄을 다른 데로 돌리는 "어머니같은  손"에 의해 죽음의 문턱에서 헤어났습니다. 이후 교황은 자신의 지프에 남아있던 총탄 하나를 파티마 교회에 건네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총탄은 지금 파티마 성당의 성모 마리아상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파티마 제3의 예언

 1989년 무신론 국가이던 소련이 와해되고, 동구 공산주의도 해체됐습니다. 교황께서는 이에 대해 성모 마리아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선 지금도 교회와 기독교도에 대한 핍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파티마의 마지막 비밀은 이제 과거가 됐지만, 마리아께선 지금도 우리의 회심을 진정 원하고 계십니다. 성도들이 마리아의 계시를 좀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황께서는 교리국에 파티마 비밀의 공개를 지시하셨습니다. 바티칸(교황청)은 이에 대한 해석이 준비되는 대로 그 내용을 공개할 것입니다.

 교황청 관계자들은 이 세 번째 예언이 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저격기도라고 밝혔다. 1981년 5월 13일, 교황이 로마 베드로 성당 앞에서 터키인 저격수 메흐메 알리 아그차에게 3m거리에서 저격당해 쓰러졌던 사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예언은 "흰옷을 입은 주교가 순교자들의 시신 사이로 십자가를 향해 걷다가 갑자기 날아온 총탄 한발에 맞아 죽은 듯이 땅에 쓰러졌다"는 내용이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저격을 당했으나 교황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고 성모 마리아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줬다는 점을 강조했다.

 교황청은 파티마 예언을 받은 3명의 어린이 중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 데제수스 두스 상투스 수녀가 직접 쓴 계시 원문과 이를 교황 암살기도 및 공산주의의 기독교 탄압으로 해석한 문서를 함께 공개했다. 교황청은 제 3의 예언을 둘러싼 갖가지 추측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요세프 라친거 추기경은 어떠한 엄청난 비밀도 나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티마 제3의 예언

 양치기 남매의 시복식에 맞춘 교황청의 공개는 종교적 예언이 상업화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종말론 등 사교 확신을 저지하려는 의도도 포함된 것이다. 파티마 제 3예언은 그 동안 수백 권의 책과 수천 개의 웹사이트를 양산했고 예언의 내용을 캐내기 위한 광신도들의 단식 투쟁을 일으켰다. 1981년에는 예언의 내용을 공개하라는 비행기 납치사건이 있었으며 이듬 해엔 스페인의 한 신부가 교황에게 칼을 들이대며 파티마 예언을 확인하려다 경호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파티마에는 매년 5~10월에 병을 고치려는 사람과 성모 마리아의 자비를 기원하는 순례자들이 500만명씩 몰려들고 있다.

 교황청의 일방적인 발표 내용이 다소 충격적이기는 하나 제 1의 예언과 제 2의 예언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진다. 이 제 3의 예언을 왜 그토록 오랫동안 숨겨왔는가에 대한 의문은 역시 풀리지 않는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의문을 품고 있다.


참고 자료 : http://www.chartchart.com/conts/ct_conts_view.asp?id=36(폐쇄)

http://www.iresys.pe.kr/seven/law/l006.htm(폐쇄)

http://oldhome.pe.kr/etc/mistery/partima.htm(폐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