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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 미라에서 발견된 코카인의 미스터리

람세스 2세 미라에서 발견된 코카인의 미스터리

 람세스 2세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제3대 파라오이다. 그의 치세 동안 이집트는 리비아 누비아, 팔레스타인까지 영토를 확장해 번영하였다. 람세스 2세의 미라는 카이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1976년 9월, 기획 전시를 위해 프랑스 파리로 공수되었다.

람세스2세 흉상(람세스2세 흉상, 대영박물관 소장)

 그런데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조사를 하던 프랑스 과학자들은 미생물에 의해 이 미라가 손상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런 와중에 파리자연사박물관의 미셸 레스코(Michelle Lescot)가 붕대로 사용한 천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던 중 작은 담뱃잎 조각을 발견하게 되었다.

 콜럼버스가 남미에서 담배를 가져오기 전에 구대륙에는 담배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당시 학계에서는 이 담뱃잎 조각이 발굴팀에 의해 유입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19세기 초에는 많은 고고학자들이 유적 발굴 중에 휴식을 취하면서 파이프 담배를 즐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레스코는 반론을 제기했다. 미라의 가장 안쪽인 복부에서도 담뱃잎 조각이 발견되었다. 누군가 파이프 담배에서 담뱃잎을 떨어뜨렸다면 미라의 깊은 속에서 그것이 발견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반론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잊혀져 갔다.

 1992년 독일의 병리학자 스베틀라나 발라바노바(Svetlana Balabanova)는 뮌헨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원전 약 1000년부터 기원후 약 400년 사이의 이집트 미라 9개의 머리카락, 피부, 그리고 뼈에 포함된 성분을 조사했다. 그 결과 모든 샘플에서 대마의 환각 성분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과 함께 코카인이 검출됐고, 여덟 샘플에서는 니코틴이 검출됐다. 대마나 아편과 같은 마약류가 고대 이집트에서 종교의식이나 의료 목적으로 널리 사용됐기 때문에 THC의 검출은 예상되었던 일이다. 하지만 코카인과 니코틴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코카 식물이나 담배 식물은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 자생하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성분을 함유하는 식물을 그들은 어디서 구했을까?

코카 나무(코카 나무 - 출처 : design-is-fine.org)

 관련 학자들은 그 미라들에서 검출된 코카인과 니코틴이 남아메리카 대륙 서식종에서 추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디디기 2,500년 전에 고대 이집트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대륙에서 구할 수 있는 물질을 갖고 있었을까? 이 문제는 그 후로 학자들 간의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됐다.

 처음에는 그 분석 결과가 오염에 따른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었으나 분석팀의 면면이나 발표된 학술지의 권위로 볼 때 그런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이 분석을 주도한 발라바노바 박사는 오늘날 범죄 수사나 스포츠계에서 널리 사용하는 도핑 방법을 세계 최초로 발명해 이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었다.

 한편 미라들이 최근 조작된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로잘리 데이비드(Rosalie David)는 그 미라들이 고대 이집트인의 시신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근대 또는 현대의 시신으로 만들어진 가짜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이 경우 담배나 코카인을 애용했던 사람들이 미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서구에 이집트 열풍이 불자 이집트 전역에서 미라와 그밖의 유물들이 품귀 현상을 빚었다. 데이비드는 그 당시 현대 이집트인들의 시신을 재료로 다량의 가짜 미라들이 생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박물관에서 발행한 관련 논문과 책자들을 자세히 읽어본 후 처음 품었던 의심을 걷어내고 그것들이 진품이라는 잠정적 결론에 도달했다.

담배 나무(담배 나무 - 출처 : pinterest.com)

 발라바노바는 출처가 좀 더 명확한 다수의 미라들을 대상으로 후속연구를 시작했다. 그녀와 동료들은 한때 이집트 영토였던 수단 지역에서 발굴된 미라 샘플 134점에 대한 도핑 테스트를 실시했다. 분석 결과 약 1/3의 샘플에서 니코틴과 코카인 성분이 검출되었다. 이 결과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니코틴과 코카인을 흡입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게 되었다.

 발라바노바는 오랜 옛날 남미에서 자라는 것과 유사한 종의 담배와 코카나무가 구대륙에 자생하고 있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미셸 레스코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포함한 서남태평양 제도와 태평양의 섬들에 니코틴 함량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유사종들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유럽에도 니코틴이 함유된 담배 변종 식물이 자생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거가 제시되었다. 그러나 코카나무의 경우 남미 외에 아시아,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에 유사종들이 있으나 코카인 함량이 남미의 5%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집트인들에게는 향정신성 물질의 식물이 익숙했다. 고대 이집트에서 애용되었던 청수련꽃과 아편 열매 등이 벽화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집트 벽화에서 담배와 코카 식물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집트인들은 식물의 원형을 보지 못했고 가공된 형태 분쇄나 농축된 형태만을 접했을 가능성이 있다. 즉, 먼 곳에서 가공된 형태로 가져왔다고 보여지는 대목이다.

페니키아인, 아시리아 전함(페니키아인이 만든 아시리아 전함, 출처 : lightandlife.org)

 그렇다면 실제로 고대에 신대륙과 구대륙 간에 교류가 있었던 것일까? 이집트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페니키아인들이 두 대륙간 무역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당시 그들의 항해 능력은 아주 탁월했는데 일부 학자들은 페니키아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도달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설사 항해를 했더라도 아주 간헐적이었을 것이라는 학계의 주장이 있다.

 이집트 룩소르에서 발굴된 기원전 1,000년경의 미라 머리카락에서 비단 실 몇 올이 발견되어 이집트인들이 태평양까지 도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코넬 대학의 역사학 교수 마틴 버널(Martin Bernal)은 이 비단이 중국에서 이집트로 유입된 것 등으로 미루어 당시 국제적인 교역이 있었음이 명백하다고 하였다. 몇몇 문명확산론자들은 중국인들이 기원전 1500년경부터 기원후 900년까지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를 오가는 교역을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몇가지 가설을 가지고 코카와 담배 교역에 직접 연관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폴리네시아인들이 관련되어 있다거나 대양을 항해했던 스파이스군도인이 전해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떤 경로로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코카와 담배가 공급되었는지는 여전히 과학과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참고자료 : 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2017년, 맹성렬 저, 김영사, p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