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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결사의 시초, 장미십자회

비밀결사의 시초, 장미십자회[薔薇十字會, Rosicrucians(영), Rosenkreuzer(독)]

 마술과 마법의 위력에 매혹된 비밀조직은 인류 역사에 끊임없이 등장하였다.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지만 실체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1614년경 독일 카셀에서 발행된 소책자에 나오는 장미십자회라는 조직이다.

 장미십자회는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활동한 비밀단체로 예수의 부활과 구속을 뜻하는 십자가와 장미 문양이 그려진 깃발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독일 태생의 의사이자 신비주의 철학자인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Christian Rosenkreutz)라는 인물이 장미십자회를 결성했다고 한다.

장미십자회, 薔薇十字會, Rosicrucians, Rosenkreuzer

 프리메이슨을 비롯하여 많은 오컬트 집단이 자신들의 교의가 장미십자회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장미십자회의 역사를 연구한 많은 이들은 이 단체들 간에 유사점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장미십자회가 존재하지만 과거의 단체와는 큰 관련성이 없다.

 장미십자회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기록상으로 처음 나타난 것은 1614년에 출판된 '형제애에 대하여(Fama Fraternitatis)'이다. 이 소책자는 장미십자회의 창시자 로젠크로이츠의 여행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1378년 독일에 태어난 로젠크로이츠는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16살까지 수도원에서 자랐다. 성장한 그는 지식에 대한 욕구에 눈을 떠 동료와 함께 성지순례를 떠났다. 원래 지식욕이 왕성했던 로젠크로이츠는 아랍의 현자들로부터 많은 지식을 배웠다. 그는 비학의 지혜, 수학, 자연과학, 연금술 등에 통달했으며, 특히 이집트의 영적이고 연금술적인 신비를 전수받았다.

 처음에 그는 아랍에서 얻은 지식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려 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행동은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박해받는 원인이 되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수준높은 지식은 일부 특권층에게만 독점되고 있었고 그 덕분에 지식인들은 존경과 명성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된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이 자랐던 수도원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마술, 연금술 등을 가르쳤다. 이 지식을 다른 3명에게 전수했고 이 3명의 제자가 후에 8명으로 늘어났다.

 그는 이들에게 방대한 총서를 편집하게 했는데 그중 5명은 매년 한차례씩 모임을 가지면서 후계자를 물색하였다. 100년간 비밀을 엄수하기로 서약하였다. 이들은 각기 다른 나라로 돌아가 세계적인 단체가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장미십자회는 ‘성령의 집’으로 불리는 숨겨진 집을 거점으로 각지에서 활동하였다. 일정하게 정해진 의복은 없었으며 체류하는 나라의 풍습에 따랐다. 중병을 앓는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장미십자회, 성령의 집(성령의 집 - 출처 : Wikimedia Commons)

 이 소책자는 로젠크로이츠가 106세에 사망하였고 그 후 120년이 지나서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채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고 기술했다. 오늘날 그에 대한 평가는 실존 인물이었다기 보다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1615년에 나온 콘페시오 프라테르니타티스(Confessio Fraternitatis)란 제목의 두번째 소책자는 이 조직의 목적을 설명했다. 1616년에 나온 세번째 소책자는 비학적인 함축성을 담은 수수께끼 같은 비유로 표면상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에 관해 자세히 설명했다.

 현대의 학자들은 이 세번째이자 마지막 소책자가 당시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였던 요한 발렌티 안드레아가 쓴 것으로 추정해왔다. 첫번째와 두번째 소책자도 안드레아가 썼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집필 동기가 사람들은 꾸짖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호의적인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소책자들은 17세기 유럽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런 비밀조직이 실재하는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이 조직에 서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철학자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등도 이 단체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장미십자회는 가톨릭의 교리를 부정하는 입장을 내세워 가톨릭 단체 및 교회로부터 지탄과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17세기 유럽에서 공상소설가들이 이를 소재로 많은 작품을 쓰기도 했다.

 독일, 영국, 러시아, 폴란드 등에 소개되어 확산되었다가 18세기 말에는 세력을 잃어 거의 소멸되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장미십자회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살아 있다.


참고자료 : https://ko.wikipedia.org/wiki/장미십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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