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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섬에 치열한 경쟁은 없었다

이스터 섬에 치열한 경쟁은 없었다

 남아메리카 칠레에서 서쪽으로 약 3,700km 떨어진 이스터 섬과 이 곳에 정착해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입니다. 특히 이들이 만든 거대한 모아이 석상은 수수께끼의 중심에 있습니다.

 모아이 석상을 제작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떤 형태의 공동체를 이루었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멸망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도 어떠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아이, 이스터섬, 칠레, 라파누이모아이 석상 (출처 : Pixabay)

 그런데 최근 이스터 섬의 사람들은 경쟁보다는 협력이 강조된 사회를 이루었으며 스스로 자멸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호주 퀸즐랜드대와 미국 필드 자연사 박물관 등 공동 연구팀은 유적의 화학적 분석을 통한 결과를 8월 13일 "태평양고고학(Pacific Archaeology)"이라는 학술지에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이스터섬에 지도자, 수도자, 일꾼 등 최소 3가지의 계급이 존재했으며 그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사회를 이루었을 것이라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스터 섬에 약 900년 전 처음 도착한 폴리네시아계 원주민들을 라파누이(Rapa Nui)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이후 수천명으로 인구가 증가했으며 그들만의 지위 체계를 확립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연구팀은 이스터섬 라노 라라쿠 지역의 4개 모아이 석상 유적 인근에서 나온 1,600여개의 현무암질 암석의 용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이 암석들은 약 21가지의 용도가 다른 도구로 확인되었습니다. 도구의 종류로 볼 때 지도자와 수도사, 농부나 어부 등 당시 이 곳 사회에는 다양한 직업 계층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추정했습니다.

 또 암석들의 화학 조성을 확인하기 위해 질량 분석을 실시하였습니다. 여기서 약 17가지 도구가 같은 채석장의 암석을 사용한 것임을 추가로 확인하였습니다. 연구를 이끈 퀸즐랜드 대 데일 심슨 연구원은 대부분의 도구가 같은 채석장에서 나온 암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들 사회가 매우 협력적이었다는 반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심슨 연구원은 단 수천명의 인원으로 모아이의 재료가 되는 커다란 암석을 운반하려면 거의 모든 구성원을 움직일 수 있는 단일 정치 조직이 운영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일부에서 내부의 치열한 경쟁으로 사회가 몰락했다는 것은 과장된 견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한편 모아이 유적 발굴을 총괄하는 캘리포니아대 코트센 반 틸브루그 교수는 고성원이 쓰는 도구를 하나의 채석장에서 생산했다는 사실로 비추어보아 이 사회가 정보를 교환하는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면서도 이들이 전적으로 협력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특정 정치 체제 하에서 강압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수 있다면서 섬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서는 아직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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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1 - [고대문명.유물.유적] - 이스터 섬의 거석상, 모아이(Mo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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