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흔적, 백제에서 발굴된 중국인 무덤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 고분군에서 전형적인 중국계 무덤이 발굴되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지난 8월 18일 백제석실분 발굴현장에서 전문가 설명회가 열렸는데요, 한성에 도읍한 4-5세기 초기 백제시대의 고분군에서 다양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학자들을 설레게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무덤의 형태와 출토품을 보니 중국계 이주민일 것이라는 정황이 드러난 것입니다.
2015년 11월부터 하남시 감일동 공공주택지구 조성터에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수만평에 달하는 터에서 초기 백제시대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이 52기가 드러났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무덤이 발견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하남 감일동 고분군의 5호 무덤(출처 : 한겨레)
출토품을 보면, 호랑이머리 또는 닭머리가 물 따르는 주구에 달린 중국 동진의 청자, 누금기법으로 만든 금제구슬, 망자를 기리는 작은 토기인 명기, 주둥이는 곧고 어깨는 넓직한 동진·남조 양식의 직구광견호 항아리 등이 있습니다.
무덤의 형태가 전형적인 중국풍이라고 합니다. 대게 평면을 장방형으로 조성하고 4면의 벽에는 벽돌처럼 돌을 다듬어 쌓아올리고 윗부분을 덮개돌로 덮은 석실 구조는 3-5세기 중국 동진·남조, 낙랑계 무덤에서 보이는 벽돌을 쌓은 무덤(전축분) 양식과 닮아 있습니다. 한성백제 지배층의 무덤인 서울 방이동이나 석촌동 고분이 주로 돌무지무덤(적석총), 옹관무덤, 토광묘 양식인 것과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상당수의 고고학 전문가들은 감일동 고분이 3-5세기 중국 대륙의 전란과 낙랑군 멸망 등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백제로 유입된 중국계 이주민의 생활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당대 동아시아 혼란기에 다수의 유민들이 한반도에 뿌리내렸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백제에서 이들은 외교, 역법, 교육 등 전문 직종에 종사하면서 자신들 특유의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감일동 고분군은 이주민들의 일부가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며 살았던 흔적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원문 기사의 마지막이 조금 이상한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만 이번 발굴은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실을 실증적으로 확인시켜준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옛 문헌의 기록에도 당대 백제의 왕성한 국제 교류와 개방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백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대국가에서 모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처용은 신라에 내왕하던 아라비아 상인이라는 가설이 있기도 하고, 가야의 수로왕의 부인이었던 허황옥은 고대 인도의 아유타국의 사람이라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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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582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