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설인, 예티(Yeti)
예티(Yeti)는 히말라야 산맥에 자주 출몰하는 털복숭이 유인원을 부르는 말이며 히말라야에 등정하는 사람들은 자주 그들을 목격한다고 한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예티는 키가 2~2.5m정도의 큰 키에 150kg정도의 몸무게를 가졌다고 한다. 검은색의 털을 거진 것과 하얀색의 털을 가진 것이 있다고 한다. 'Yeti'라는 이름은 네팔의 민족어인 설파의 'Yeh Teh'라는 단어에서 왔다고 하며 '저기있는 저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예티란 수컷 설인을 가리키는 말이고 메티(Meti)란 암컷 설인을 가리킨다고 한다. 메티는 140cm정도의 키에 발자국은 20cm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괴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메티가 예티보다 더 사납다고 한다.
1832년 네팔 왕실 주제 영국 공사인 B.H. 호지슨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가 유럽에 최초로 예티를 알린 사건으로 보인다. 호지슨이 고용한 새 사냥꾼이 검은 털로 뒤덮인 "야만인"을 목격하고 공포에 떨었다고 전했다. 1898년에는 영국인 와딜 소령이 히말라야 산속에서 눈 위에 찍힌 45cm짜리 괴물의 발자국을 보았다. 그 뒤로 괴물을 보았다는 사람이 잇달아 나타났다. 1951년 11월,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던 영국의 산악인 쉽튼과 그의 동료들은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발견했다. 그것은 길이가 34cm에 폭이 21cm나 되었다. 사람의 발자국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 이상한 발자국을 따라가 보았는데 1.6km정도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을 지나면서 발자국은 사라졌다. 그들이 발자국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하여 아이스 피켈을 나란히 놓고 찍은 사진이 설인 존재의 가장 큰 증거가 되고 있다.
1952년에는 에베레스트에 처음오른 에드먼드 힐러리가 쿰부 빙하에서 설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털을 발견하였다. 그는 또 팜보체의 라마교 절에 설인의 머리털이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히말라야 동물 연구소의 러셀 박사가 이끄는 조사대가 두 털을 조사한 결과, 둘 다 짐승의 것으로 밝혀졌으며 유인원의 것은 아니었다.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털이며 히말라야 산 속의 알려지지 않은 짐승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표했다.
세계의 눈과 귀가 히말라야로 쏠리고 많은 탐험대들이 몰려들자 라마교 절들은 예티의 것이라면서 엄지손가락 뼈와 집게 손가락 관절, 가죽 조각 등을 내어 놓았다. 그러나 1957년, Peter Byrne라는 미국계 탐험가가 네팔의 절에 있던 예티의 손 뼈를 사람의 손 뼈와 바꿔치기 하여 미국의 갑부에게 팔아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이후로 티벳과 네팔에 있는 절의 주지들은 그 소장품들을 절대로 언론인들에게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 손 뼈는 1959년 과학 수사 연구소의 뼈 성분검사 결과 사람의 뼈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고 그 뒤로는 누가 소장하고 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국 탐험대는 두 번이나 예티를 눈 앞에서 놓치는 불운을 겪었다. 1958년, 미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동물 협회 회장 스릭 박사가 이끄는 탐험대는 예티가 즐겨 먹는다는 개구리를 가지고 예티를 포획하려 하였다. 예티를 두 번이나 목격하는데는 성공(?)하였으나 허둥대는 사이에 예티를 놓쳐 버렸다.
1972년 티벳에서 가축을 훔쳐 달아나는 물체를 중국군이 사살했는데 키 154cm에 팔이 무릎에 닿을 만큼 길고 얼굴이 원숭이를 닮은 괴물 암컷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1984년 8월 19일 '북경만보'가 뒤늦게 보도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1988년 1월20일 소련의 타스 통신도 소련 문화부 '신비한 동물협회' 조사반이 힌두쿠시 산맥 북쪽에서 설인을 보았다고 보도하였다.
영국 방송 채널4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영국 과학 탐험대는 부탄 왕실(히말라야 동쪽에 위치한 부탄왕국의 삼나무 숲이 예티의 서식지로 추측된다)의 공식 예티 사냥꾼인 소남 덴덥을 따라 이상한 흔적이 발견된 곳을 방문하였는데 그 곳에서 나무껍질에 길고 검은 털을 발견하였다. 이에 대한 DNA분석 결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옥스퍼드 대학 분자의학 연구소의 인간 유전자 교수 브라이언 사이키스는 그 털이 인간의 것도 아니고 곰의 것도 아니며 지금껏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탐험대는 예티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과 배설물을 찾아 냈는데 분석 결과 사람과 마찬가지로 육식과 채식을 겸하는 동물의 배설물이었다고 한다. 네팔의 쿵정 마을에서 나온 원뿔 모양의 머리 가죽은 한 때 예티의 것이라며 유럽에서 전시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예티는 1950년대까지 네팔 왕국의 공식 보호종이었으며 일부 국민들은 그들의 존재를 믿었다고 한다.
예티, 즉 히말라야 설인(雪人)에 대한 결론은 다양하다. 학자들은 1930년대에 아시아 곳곳에서 발견되었던 키 3~4m의 원인(猿人) 기간토피테쿠스(약 50만 년 전에 히말라야 지역에서 생존)의 후손이라고 추측했다. 이 거대한 원인이 사람과의 생존 경쟁에서 밀려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예티가 여러 면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하다고 한다. 더구나 발자국 가운데 엄지발가락과 다른 발가락 사이가 V자 모양으로 넓게 벌어진 것은 이탈리아에서 출토된 네안데르탈인 발자국 화석과 흡사하다는 주장이다. 수십만년 전 평지였던 히말라야 지방이 산으로 바뀔 때 쉽사리 환경에 적응하여 그대로 머물러 살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일부 학자들은 히말라야의 설인,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아시아의 예티, 미국의 빅풋, 캐나다의 사스콰치, 아마존 강의 마핑구아리, 오스트레일리아의 요위 등 유인원과 닮은 세계 각지의 괴물을 동일한 생물로 보고 있다. 여기서는 그 목격상의 특징이 비슷한 설인과 예티를 하나로 묶고, 빅풋과 사스콰치를 하나로 묶어 따로 글을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