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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믿음

3000년에 한번 피는 꽃, 우담바라

3000년에 한번 피는 꽃, 우담바라

 우담바라가 피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우담바라(優曇婆羅, 優曇波羅, 優曇跋羅華, 優曇鉢華, 優曇華 등으로 표기)는 불교 경전에서 3000년에 한번씩 피어나는 꽃으로 석가여래나 지혜의 왕 전륜성왕(부처처럼 32상과 7보를 갖추고 있으며 무력이 아닌 정의와 정법의 수레바퀴를 굴려 세계를 지배하는 이상적 제왕)이 나타날 때만 핀다는 상상의 꽃이다. 이 꽃이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은 상서로운 징조로 받아들여 왔으며, 아주 드문 일에 비유하기도 한다. 여래의 묘음을 듣는 것은 이 꽃을 보는 것과 같고 여래의 32상을 보는 것은 이 꽃을 보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였다.

우담바라

 우리나라에서 우담바라가 알려진 것은 경기도 광주군 도쳑면의 우리절에서 1997년 7월 22일에 24개가 발견된 것이 처음이다. 금동여래좌상 가슴부분에 직경 3cm가량의 작은 흰색 꽃송이가 피어있는 것이 발견되어 당시에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0년에 충남 계롱산 대전 광수사(2000.7)와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 청계사(2000.10.6.), 서울 관악산 용주사 연주암(2000.10.15.) 등에서 발견되었다.

 역사 기록에 보면 선문에 "꽃을 지어들고 미소 짓는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석가모니가 영취산상에서 설법을 할 때 꽃 한 그루를 집어들고 있었던 적이 있다. 그 때 많은 제자와 신도들은 설법의 제일성이 터져나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군중 속에서 유일하게 수제자 가섭(가엽)만이 꽃을 집어든 뜻을 알아차리고 미소지었다. 이에 '그대만이 나의 마음을 터득했느니라 나의 법문을 그대에게 물리리로다'고 했다. 이 유명한 이심전심의 꽃이 연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고사의 출처인 불경에 보면 우담바라의 꽃으로 돼 있다. 그리고 석가모니 이후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기록은 한 곳도 없다.

 그런데 서기 2000년은 불기 2544년이다. 아직 3000년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꽃이 잘못 피었단 말인가? 실제로 불기는 만 3000년이 서기 1974년으로 이미 3000년을 넘어 섰다고 한다. 그래서 불기 3000년만에 핀다는 전설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불교계의 일부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우담바라

 그러나 과학자들은 우담바라가 곰팡이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대개 법당 안은 빛이 잘 들지 않으므로 광합성이 어려워 식물이 살기에는 어려운 조건이다. 습도도 높은 편인데다가 불상의 표면은 매끈한 금속이다. 이런 곳에 어떻게 꽃이 필 수 있단 말인가? 이쯤되면 불상의 표면에 먼지가 앉고 공기 속의 유기물이 들러붙어 곰팡이의 포자가 내려 앉은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곰팡이 중에 점균류로 불리는 '슬라임 몰드'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메바 형태로 자라다가 한데 뭉쳐 위로 줄기를 형성하고 끝에 포자가 매달린다고 한다.

 또 일부는 풀잠자리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곤충학자들은 애벌레가 알을 빠져 나가고 알껍질이 벌어져 마치 꽃이 핀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풀잠자리 알 껍질은 실크 성분이기 때문에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더라도 잘만 보존하면 그 형태가 오래 유지될 수 있다며 최근의 우담바라는 풀잠자리 알이라고 한다. 풀잠자리는 외견상 잠자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혀 다른 부류에 속하는 날벌레이다. 주로 숲에 서식하는 풀잠자리는 봄과 가을에 걸쳐 나뭇잎에 알을 낳는다. 이 때 다른 곤충들이 알을 발견하지 못하게 길쭉한 알자루를 잎에 붙이고 그 끝에 알을 얹는다. 청계산은 수목이 울창해 다양한 곤충들이 살고 있으며 풀잠자리 종류만 해도 10여종에 이른다며 2000년 10월에 청계사에서 발견된 우담바라는 풀잠자리알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 불교 대사전에서 정의하는 우담바라의 뜻이다. 거기에는 '풀에 청령(잠자리)의 난자(알)가 붙은 것'을 우담바라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풀잠자리알이 우담바라라는 뜻이 아닌가?

 우담바라는 상상의 꽃이고 전설의 꽃이다. 몇몇 사찰에 핀 것이 우담바라라는 근거는 없지만 절대로 아니라는 근거 또한 없다. 누구도 그 꽃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담바라가 장미를 닮았는지, 풀잠자리알을 닮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우담바라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풀잠자리도 되고 곰팡이도 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우담바라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보다 이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수천명의 불자들을 단순한 호기심에서 참회와 정진의 마음으로 유도하기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