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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유물.유적

바그다드 고대전지의 미스터리

바그다드 고대전지의 미스터리

 1936년 여름, 바그다드에 있는 이라크 국립박물관 고고학자들이 바그다드 동남쪽 쿠주트 라부아 인근에서 파르티아 왕조기 유적지를 발굴하고 있었다. 여기서 한가지 독특한 유물이 발굴되었다. 그것은 진흙으로 만든 14cm 높이의 항아리인데 내부 구조가 매우 특이했다. 구리를 말아서 만든 직경 2.6cm, 길이 10cm 정도의 원통이 들어 있었고 원통의 윗부분은 역청으로 밀봉되어 있었다. 그리고 직경 1cm 길이 7.5cm 정도의 철심이 그 원통 안쪽으로 박혀 있었다.

 이라크 국립박물관의 유물 관리자였던 독일 고고학자 빌헬름 쾨니히(Wilhelm König)는 항아리 내부 구조를 확인하고서 그것이 전지와 흡사하다고 느꼈다. 현대의 전지는 1800년경 이탈리아의 과학자 알레산드로 볼타(Alessandro Volta)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 정말 전지라면 세계 최초의 전지는 알려진 것보다 무려 2,000년 전에 발명된 셈이었다.

바그다드 고대전지(출처 : atlasobscura.com)

 볼타 전지의 구조를 보면 양극(구리)과 음극(아연)에 서로 다른 두 금속이 있고 그 사이에 전해액이 채워져 있다. 두 금속에 전선을 연결하면 반응성이 큰 아연이 전자를 내어놓고 산화되고 전자는 전위차에 따라 전선을 타고 구리판으로 이동하면서 전기가 흐른다. 문제의 유물은 사용된 금속만 다를 뿐 금속 실린더와 그 내부에 금속 봉이 고정되어 있는 오늘날 사용하는 건전지의 구조와 일치했다. 차이점이라면 바그다드 전지는 건전지가 아닌 습식전지의 구조라는 점이다.

 쾨니히는 항아리 내부에 들어 있는 철심을 세밀해 조사해보고는 그것이 공기 중에서 산화된 것이 아니라 산에 의해 녹은 것처럼 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항아리에 분명히 철을 산화시킬 정도의 산성도를 지닌 용액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쾨니히는 그 유물이 전지임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1938년 1월 16일 이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주류 학계에서는 이 논문들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던 독일계 과학 저널 작가 윌리 레이(Willy Ley)가 이 주제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자신이 주요 필진으로 활동하던 한 잡지의 과학란에 소개했다. 이를 접한 제네럴 일렉트릭(GE) 사의 연구원 윌러드 그레이(Wilard F. M. Gray)는 고대전지 가설의 타당성을 검증해 보기로 했다.

 1940년 그레이는 고대 전지의 복제를 시도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안에 어떤 전해액을 넣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몇몇 고고학자들의 조언을 받아 파르티아 시대에 알려져 있던 황산구리 용액을 전해액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항아리에서는 약 0.5V의 전기가 흘렀는데 전류의 흐름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바그다드 고대전지 재현 실험(재현 실험 - 출처 : smith.edu)

 한동안 후속연구를 하지 못하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레이는 윌리 레이와 함께 연구를 재개했고 황산구리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과일즙이나 식초, 와인 등을 전해액으로 사용해 실험해 보았다. 그 결과 1-2V의 전류를 얻을 수 있었고 최장 18일 동안 전류가 흐르는 것을 확인했다. 그 후 바그다드 전지 실험이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진행됐다.

 주류 고고학자들은 그것이 전지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20여년간 이라크의 고고학 발굴에 참여했던 고고학자 엘리자베스 스톤(Elizabeth Stone)은 그것이 당시 종교적 의식에서 사용되던 것이라고 말했다. 바그다드 인근에서 발견된 항아리에서 파피루스 조각이 들어 있어 성스러운 문서 두루마리를 보관하던 보관 용기로 추정되었다. 스톤은 앞서 말한 전지가 이러한 항아리들과 같은 용도로 쓰였다고 주장했다. 두 항아리에는 몇가지 유사성이 있지만 철심이 없다는 점에서 고대전지 항아리와는 차이가 있었다.

 논란이 있지만 이 항아리가 고대 전지라고 판단한다면 그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일부 연구자들은 그것이 의학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통증 치료에 사용되었다는 것인데 바그다드 전지의 전압과 전류가 너무 약해 통증 완화 효과를 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널리 사용되었던 대마초나 아편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마취나 근육 이완 등에는 미약한 전압이나 전류만 있어도 가능하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또다른 일부 학자들은 바그다드 전지가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추정한다. 사원의 신상 안에 전지를 넣고 거기에 전기가 통하도록 하여 이를 만지는 이들이 전기 충격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종교적 경외감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도 전압과 전류가 약해 충분하지 않다는 반론이 있는데 그 문제는 여러개의 전지를 직렬로 연결해 해결할 수 있고 살짝 충격을 주는 정도라면 그다지 높은 전압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바그다드 고대전지 구성(출처 : aquiziam.com)

 쾨니히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고 현재까지 꾸준히 선호되는 가설은 당시 고대인들이 전지를 사용하여 금속 도금을 했다는 가설이다. 전기 도금은 전기 분해의 원리를 이용해 전해액 속에 녹아 있는 금속을 다른 금속 위에 얇게 입히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이탈리아 화학자 루이지 브루그나텔리(Luigi Brugnatelli)가 볼타가 발명한 전지를 사용하여 1805년에 성공하였다.

 독일의 ‘뢰머와 펠리제우스 박물관’의 책임자 아르네 에게브레트(Arne Eggebrecht) 박사는 1978년 바그다드 전지를 사용해 도금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그녀는 포도즙을 전해액으로 사용한 바그다드 전지를 여러 개 복제해서 직렬 연결한 후 한쪽 전극을 은제 브로치에 그리고 다른 쪽 전극은 금판에 연결했다. 이 두 금속이 시안화금 용액에 담겨지고 두 시간쯤 뒤에 은제 브로치에 약 1㎛ 두께의 금박막이 입혀졌다고 한다.

 그런데 바그다드에서 나온 항아리가 전지라고 믿는 학자들도 그것이 전기도금에 사용됐다는 주장에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덧입히는 금속은 부식이 잘 되지 않는 금이나 은같은 고전위 금속인데 이 금속들은 물에 잘 녹지 않기 때문에 시안화금이나 은시안화칼륨 같은 특별한 전해액이 필요하다. 이런 전해액들은 만들기가 어려운데 당시에 이런 제조 지식이 있었는가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시대에 전기 도금으로 보여지는 유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아직 학계에서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였고 전란 중에 박물관이 약탈당하는 불상사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때 몇 점의 바그다드 고대 전지 중 일부도 사라져 버렸다.


참고자료 : 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2017년, 맹성렬 저, 김영사, p149-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