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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가사의

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암각화의 발견 반구대 암각화(盤龜臺 岩刻畫)는 1971년 12월 울산 태화강 주변에서 불교유적으로 조사하던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팀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그림이 새겨진 바위의 크기는 너비 10m, 높이 4m에 이른다. 1975년을 비롯해 여러 차례 조사를 실시하였고 1984년 종합보고서가 간행되는 등 그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1995년 국보(제 285호)로 지정되었다. 암각화는 바위 그림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바위 위에 다양한 기술로 그려진 모든 그림을 뜻한다. 전세계 거의 모든 지역과 시대에 걸쳐 나타나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예술 표현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날카로운 도구로 돌을 쪼아내는 기법으로 면과 선들을 표현하였는데, 신석기 시대 후기에서 .. 더보기
마이산 탑사 마이산 탑사 아주 먼 옛날, 큰 죄를 지어 하늘에서 쫓겨난 한 산신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세상에서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며 속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 속죄의 날이 지나고 드디어 하늘로 승천의 기회가 생겼다. 남편 산신은 그들이 승천하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면 부정을 탈 것이니 깊은 밤중인 자시(11~1시)에 승천을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아내는 한밤중은 너무 무섭고 피곤하다며 푹 자고 나서 이른 새벽에 올라가자고 했다. 남편은 일을 그르칠까 걱정되었지만 아내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에 승천하기로 결정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새벽, 마침내 산신 부부는 승천을 시도했다. 하늘을 향해 산이 쑥쑥 솟아가고 있을 때 아랫 마을의 한 아낙네가 정한수를 뜨려고 우물을 찾았다가 그.. 더보기
운주사 와불과 천불천탑 운주사 와불과 천불천탑 구름도 머물고 쉬어간다는 운주사(雲住寺). 운주사는 전라남도 화순군과 나주시, 그리고 장흥군이 접하는 화순군 서남쪽 외곽에 위치해 있다. 현재 이 운주사의 평지 및 야산 골짜기에는 80여구의 석불과 19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는데 그 특이한 조형미와 수적 규모 때문에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운주사하면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탑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석탑과 석불을 합쳐 100여개 남짓밖에 안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마도 11세기 초반 운주사 창건 이후 수많은 전란과 재난에 의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80년대만 해도 이 운주사 돌탑과 돌부처 바로 앞까지 논밭이 있어서 이곳이 훼손될 수밖에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인근의 노인들에 의하면 인근 마을 사람들 중.. 더보기
팔만대장경의 신비 팔만대장경의 신비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은 지금으로부터 750여년전인 고려 고종 때 1236년에서 1251년까지 16년간에 걸쳐 제작된 목판이다. 몽고의 병란을 맞아 국가 위기를 대처하기 위하여 전국민이 단결하여 부처님의 힘으로 적을 물리치겠다는 의지로 만들어낸 우리의 위대한 유산이다. 총 81,258판 1,511부 6,802권으로 상하 두 채의 목조 건물인 수다라장과 법보전의 판가에 칸 당 2층씩 5층으로 경판을 세워서 이중으로 포개어 놓았다. 연대가 확실치 않은 잡판이라 부르는 경판과 함께 고려 각판 2,835장이 보관되어 있다. 마구리(인쇄시 편의를 위한 부분)를 포함한 총 길이는 68cm나 78cm짜리가 대부분이며 폭은 약 24cm, 두께 2.7~3.3cm이고 평균 약 2.8cm, 무게는 3~3.5k.. 더보기
조화의 극치, 석굴암 조화의 극치, 석굴암 경주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석굴암은 세계 불교 미술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예술품이다. 본존불상의 고요한 모습, 가늘게 뜬 눈, 온화한 눈썹, 미간에 서려있는 슬기, 금방이라도 설법할 듯 자비로운 입 등 깊고 숭고한 내면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751년, 신라 경덕왕 때 재상 김대성에 의해 창건된 석굴암은 해발 745m 지점에서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데 석불의 정면에는 문무왕 수중왕릉이 보인다. 아침해가 솟아오르면 불상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오르고 새하얀 불상에 햇살이 반사되면 석굴 속은 마치 반사광을 받은 듯 신비에 젖는다. 경덕왕은 신라 35대의 임금으로 선왕인 34대 효성왕의 동생이다. 경덕왕대는 삼국통일이 완성되어 국내외의 혼란이 수습되고 안정을 찾아 평화와 풍요를 구.. 더보기
황룡사 9층탑 황룡사 9층탑 553년(진흥왕 14년) 2월에 월성(月城)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짓게 하였으나 그 곳에서 황룡(黃龍)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사찰로 고쳐 짓게 하고 절 이름을 황룡사(皇龍寺)라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569년에 돌담장을 두르고 경역(境域)을 마련하여 일단 사찰의 건물배치가 완료되었다. 그 뒤 574년에 6장이 넘는 주존불을 비롯하여 금동삼존불을 만들고, 이 삼존불을 모시기 위한 금당을 584년에 세웠다. 황룡사는 동으로는 명활산(明活山), 서로는 선도산(仙桃山), 북으로는 금강산(金剛山), 남으로는 남산(南山)을 서로 연결했을 때 교차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담장 내부의 면적만 약 24,700평에 달한다. 또한 이 곳이 늪지였으므로 기존의 토지를 징발할 필요가 없었다. 황룡사의 가람 .. 더보기
선사시대의 무덤, 고인돌(Dolmen) 선사시대의 무덤, 고인돌(Dolmen) 고인돌. 흔히 청동기나 초기 철기 시대에 경제력이나 정치 권력을 가지 자의 무덤으로 보고 있다. 제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설도 있다. 현재 축조 시기와 기원, 목적 등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웅장하고 거대한 고인돌의 불가사의한 축조는 사람들에게 많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고인돌은 큰돌을 받치고 있는 괸돌 또는 고임돌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민간에서도 고엔돌, 굄돌, 되무덤, 도무덤 등으로 불린다. 일본에서는 고인돌을 지석묘(支石墓)라 하며(우리나라에서도 한자로는 지석묘라 씀) 중국에서는 돌로 만든 집이란 의미로 석붕(石棚)이라 한다. 켈트어로는 탁자란 뜻의 Dol과 돌이란 의미인 Men의 합성어로 돌멘(Dolmen)이라 하고 영어로는 Table Stone이라 한다.. 더보기
이순신의 거북선 이순신의 거북선 거북선은 임진왜란 직전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고안으로 건조된 전선(戰船)이다. 1591년(선조 24년) 정읍현감 이순신은 전라좌수도 수군절도사로 부임하여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 거북선을 만들 것을 결심한다.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따르면 거북선의 진수식을 가진 날은 임진년(壬辰年:1592) 3월 27일이며, 처음 해전에 참가한 것은 장계(狀啓)에서 “5월 29일 사천해전(泗川海戰)”이라 하였다. 현재 전해오는 문헌 중 '거북선'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는 1413년(태종 13년) 5월 초에 "거북선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고, 2년 후에는 다시 "거북선이 매우 견고하여 적선이 해치지 못한다"고 되어 있으나 어떤 형태와 규모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혀 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