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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믿음

모세의 기적

모세의 기적

 구약성서의 "출애굽기"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인들을 두려워 한 파라오는 갓 태어난 이스라엘인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때 태어난 모세(물에서 건졌다는 뜻)는 부모가 광주리 속에 넣어 나일강에 띄워 보냈는데 우연히 이집트 왕녀에게 구해져 궁정에서 자라게 된다.

 그러나 모세는 성장하면서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스라엘인 노예를 학대하는 이집트인 감독을 죽인 모세는 파라오의 추적을 피해 미디안으로 도피한다. 그 곳에서 제사장인 이드로를 만났고 그의 딸과 결혼한다. 그 후 그는 "이스라엘인을 이집트인의 손에서 구출하고 약속한 땅으로 가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이집트로 돌아간다. 모세는 파라오를 만나 이스라엘인들을 이집트로 떠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파라오는 거절한다.

 이에 모세는 10가지 재앙을 일으켜 파라오를 위협한다. 나일강의 물은 피로 변하고 땅은 개구리로 뒤덮였다. 부스럼과 종기가 사람을 괴롭혔고, 전염병은 사람은 물론 동물에게도 번져갔다. 하늘에서는 우박과 불꽃이 떨어졌으며 메뚜기떼가 출몰하여 곡식을 모두 갉아 먹었다. 암흑이 이집트를 뒤덮었으며 이집트인의 장남은 모두 죽어갔다. 심한 좌절감을 견디지 못한 파라오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떠나가라고 명령했다.

 파라오의 말에 따라 모세의 인도 아래 60만 명의 이스라엘인들은 430년 동안 살아오던 이집트 땅을 떠났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를 떠나자마자 그들을 보낸 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은 파라오는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추적하여 홍해 근처에서 따라 잡았다.

 진퇴양난의 위기 상황에서 모세가 두 손을 바다 위로 내밀자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져 길이 생겨났다. 이스라엘인들은 이 바다에 난 길을 밟고 무사히 건너갈 수 있었지만 추적해오던 파라오의 군대는 바닷길을 건너는 도중에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전멸하였다.

 그리고 2년 후 이스라엘인들은 카데시바르네아에 도착하였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과 멀지 않은 곳이었으나 모세는 곧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38년 동안 사막 지역에 머물면서 사람들을 단결시켰다. 드디어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이 한 세대나 머물러 있던 곳에서 출발하여 가나안의 도회지 예리코를 향해 출발할 때가 되었다. 그 순간 모세는 자신이 염원하던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끝마친다.

모세, 출애굽기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모세가 과연 실존 인물이냐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는 이집트에서 모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역사상 이집트인들만큼 역사를 철저하게 사실 그대로 기록한 민족은 없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집트가 세계의 중심이며 또 신이 사는 세계라 믿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역사에 대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이 역사를 조작하지 않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역사적인 사실을 충실히 기록하였던 이집트인이 모세의 탈출과 같은 대사건이 있었다면 고의적으로 누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집트라는 말이 680번이나 나오는데 반해 이집트인들의 자료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기원전 1220년경, 람세스 2세의 후계자인 미네타프 왕 5년에 단 한번 나온다. "이스라엘은 황폐화되었고 그들은 남아있지 않다"라고 승전비에 적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고대 이집트 역사에 정통한 학자들은 모세의 이야기가 이스라엘인들의 일방적인 주장이며 조작된 이야기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일부 학자들은 모세의 탈출을 비롯한 이스라엘인들의 동향은 이집트인들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사건이 아니므로 기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도 제시한다.

 또한,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모세의 실제 여부와 함께 가장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스라엘인들이 왜 이집트에서 고통을 받아야 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인들이 언제부터 이집트에 살고 있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거주하기 시작한 연대는 대체로 기원전 1850년경 또는 힉소스인들이 이집트를 점령하고 통치하였을 시기(기원전 1750~1540년)였다는 데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집트를 200여년간 통치하였던 힉소스인들은 대부분이 셈족이며 일부가 인도, 유럽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 때까지는 이집트에는 도입되지 않았던 말과 전차를 타고 질풍과 같이 이집트에 침입하여 삼각주 동쪽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힉소스인들은 이집트 전 국토를 점령하지 않고 이집트 남쪽만 직접 통치하고 이집트 북쪽은 방임하였다.

 이스라엘 인들은 이스라엘 지역에서 잦은 가뭄 등으로 식량을 제대로 구할 수 없게 되자 비옥한 이집트 땅을 항상 동경하였다. 이스라엘인들은 이집트에 있는 늘푸른 오아시스를 탐내여 어떻게 해서든지 살기 좋은 이집트에 정착하려고 노력하였다. 당연히 이집트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인들은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폐피 2세 때에는 이스라엘인들이 배를 건설하는 노동자들을 학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자유의사로 이집트로 들어온 이스라엘인들은 전쟁 포로와는 다른 대접을 받았다. 전쟁 포로들은 마을이나 건물을 세우는데 주로 동원되었지만 직업이나 식량을 얻기 위해 이집트에 온 사람들은 부자들에게 고용되거나 관청에서도 일할 수 있었다. 한편 노예제도가 없는 이집트에서 셈족인 이스라엘인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것도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힉소스인들이 이집트를 점령하였을 때 그들과 함께 유입되거나 또는 이전부터 정착하고 있던 이스라엘인들이 힉소스인들에게 협조하여 이집트인들을 학대하였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이 힉소스인들을 축출하기 위하여 해방 운동을 할 때에도 이스라엘인들은 소극적으로 행동하거나 방임하였다. 200여년에 걸친 이집트의 해방운동이 결실을 맺자 힉소스인들에게 협조를 하던 이스라엘인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출애굽은 과연 언제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모세가 어느 시기에 살았던 사람인가를 알 필요가 있다. 모세가 생존이 가능한 시기의 폭이 너무나 넓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모세가 살았다는 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모세의 탈출을 아멘호테프 2세 치하, 즉 기원전 1450~1425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견해이며, 다른 하나는 람세스 2세가 이집트를 다스리던 기원전 1290년 전후에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모세의 출애굽이 람세스 2세 치하에서 일어났다는 것으로 간주할 경우 모세가 이스라엘엔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출발하게 되는 요인을 당시 이집트를 둘러싸고 있었던 국제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람세스 2세의 핍박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인들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이집트의 국내 사정 때문에 람세스 2세가 자발적으로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를 떠나도록 허락하였다고 볼 수 있다.

 람세스 2세는 어떤 이유로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떠나도록 명령했을까? 람세스 2세는 나일강 유역을 벗어나 히타이트, 지금의 터키 지역까지 정복 전쟁을 시도했다. 자연히 많은 병력이 필요했고 젊은 장정들이 군인으로 징발되어 이집트 국내에는 농사를 지을 노동력이 부족해지게 되었다. 이 노동력을 대신 한 것이 바로 이스라엘인들이었다.

 기원전 1290년경에 람세스는 히타이트의 아무르 왕을 상대로 그 유명한 '카데시 전투'를 벌인다. 전투는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끝이 났고 양측은 쌍방 간에 극심한 피해만을 초래하는 전쟁을 종식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러자 갑자기 국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징병되었던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 때까지 농사를 짓던 이스라엘인들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은 분쟁을 일삼는데다가 힉소스인들이 이집트를 점령하던 기간동안 이집트인들을 배반한 경력도 있으므로 이집트 측에서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다. 즉 평화시에도 분쟁을 잘 일으키는 이스라엘인들은 더 이상 이집트에서 필요치 않으므로 모두 떠나도록 한 것이다. 이 경우 이집트 입장에서 이스라엘인들의 출발이 특별한 사건이 아닐 수 있으므로 람세스 2세의 수많은 기념물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의문점도 해결된다.


 모세의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또, 성서에 기록된 많은 이야기들도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모세의 기적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면 우선 그 위치가 어디인가부터 찾아야 한다. 학자들간에 많은 논란이 있지만 다르다윌 호가 그 후보 중의 하나라고 지목되고 있다. 이 호수는 나일강이 운반한 토사가 지중해에 모래의 퇴적으로 이루어지는 땅을 형성하여 생긴 것으로 마치 바다의 길처럼 보인다. 강한 동풍이 불면 바다로부터의 높은 파도가 모래로 된 언덕을 넘어 호수로 들어가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것을 입증하는 과학적 이론도 제시되었다. 미국의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교수인 기상학자 노프 박사와 팔도 박사는 모세의 기적은 성령에 의한 초자연적인 일이 아니라 자연 현상으로 빚어질 수 있는 현실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시속 약 74km정도의 바람이 10~12시간 동안 일정한 방향으로 불어댄다면 홍해와 같은 엄청난 양의 물도 밀칠 수 있다는 것을 계산해냈다. 그들은 엄청난 바람의 힘이 물을 한 쪽으로 밀쳐 가파른 물비탈을 만들면 그 아래에 땅을 드러내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두 박사는 바람이 남쪽에서부터 계속해서 불어와 구원의 땅으로 알려진 수에즈 만의 북단 19~28km 지점에서 바닷길일 열렸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하는 이론의 문제점은 바닷물이 갈라지는 현상은 겨우 수 분 동안만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는 60만 명에 달했다는 이스라엘인들이 모두 건널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모세가 조석 현상을 이용하여 이집트군을 따돌렸다는 견해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당시의 홍해는 간만의 차가 심해 썰물 때는 걸어서 건너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마침 모세 일행이 바다를 건너려고 할 때가 썰물 때여서 맨발로도 건널 수 있었지만 뒤따라온 이집트 군은 이미 밀물 시간이 되어 바닷물에 휩쓸렸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못이나 호수 같은 곳에서는 조석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홍해같이 폐쇄된 바다 역시 조석 현상을 거의 볼 수 없다.


 또, 모세의 기적이 당시 그리스의 산토리 섬의 화산 폭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산토리 섬의 화산 폭발로 엄청난 분진이 쏟아져 나오고 거대한 해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바다가 갈라졌다는 것이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해양학자 다니엘 스텐리 박사 등은 이집트의 포트사이드에 가까운 만자라 호 주변의 지하 6m 지점에서 화산재에 섞여 있는 유리질의 흙입자를 채취했다. 그는 이 흙입자의 구조와 성분을 분석하여 이것이 기원전 1400년대 중반에 일어난 산토리 섬의 대폭발로 인한 것을 밝혀냈다. 이 발견은 산토리 섬의 화산 폭발이 이집트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출애굽기의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 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모세의 기적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고대 언어에서는 '바다가 갈라진다'는 말과 '갈대'라는 말이 거의 비슷하다. 헤브라이어의 '바다'에 해당하는 말의 참뜻은 육지에 둘러싸인 넓은 수면을 뜻하는 것으로 대양이나 바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일부 학자들은 갈대가 우거진 검은 물로 알려진 팀사아 호를 이스라엘인들이 건넜다고 믿고 있다. 물도 깊지 않으며 강한 돌풍이 불면 물밑이 보일 정도이다. 이 정도라면 아이들도 건널 수 있다. 이스라엘인들을 추격하던 이집트 군대가 빠져 죽게 된 것도 추격하기 위해 지름길을 이용하려다가 깊은 물에 빠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많은 학자들이 바다가 갈라진다는 다소 믿기 어려운 상황보다는 갈대밭을 통과하였다는 주장에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모세의 출애굽은 이스라엘인들이 민족적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거의 모든 민족들이 자신들의 시조나 영웅의 탄생과 일생을 신화로 꾸미고 있는데 모세가 물에서 구해졌다는 이야기부터 극적이다. 고약한 왕, 아름다운 공주, 보자기에 싸여 버려진 아이, 그리고 강물에 떠내려가는 바구니 등은 인도나 티베트의 신화에도 있다. 또한 모세 시대보다 훨씬 오래된 기원전 2400년경 바빌론의 신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게다가 파라오가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를 떠나는 것을 허락하도록 만들었던 10가지 재앙은 당시 이집트에서 매년 발생하던 자연 재해의 일종이다. 나일강은 해마다 10월이 되면 수위가 높아지며 물빛은 붉고 역겨운 악취를 풍긴다. 이 시기에 이집트는 우기이기 때문에 물이 불어나 강바닥에 퇴적되었던 동물들의 사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홍수의 시기에 파리와 개구리가 불어난다는 것은 당연하며 전염병이 번지는 것도 일반적인 현상이다. 사막으로부터 바람을 타고 오는 메뚜기떼의 폐해는 고질적은 이집트의 재난 중에 하나였다. 암흑에 대한 설명도 매년 춘분을 전후하여 25일 가량 열풍이 불어오는데 열풍은 모래를 말아 올려 하늘을 덮으며 이로 인하여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이다.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당시에 이스라엘인 지도자 중에 모세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대부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뭄과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이주하여 정착했다는 것도 여러 가지 사실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집트에 가서도 자신들의 종교를 고집했고 이것이 이집트인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모세라는 지도자가 태어나 그들의 수백년에 걸친 타국 생활은 끝난다. 후세 사람들은 이들의 이집트 체류와 탈출을 보다 극적으로 치장하기 위해 소설적 장치들을 이용하였다. 나아가 흥미 위주의 영화와 소설 등으로 모세의 출애굽은 현대인에게 역사적 사실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참고 자료 : 세계의 불가사의 21가지(109-127, 1998년, 이종호 저, 새로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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