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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자연

제멋대로 바위들의 카파도키아

제멋대로 바위들의 카파도키아(Cappadocia)

 터키 중부의 아나톨리아 고원 중앙에 자리잡은 카파도키아는 너른 들판에 솟아오른 기묘한 암석들이 매력을 내뿜는 곳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비한 광경에 말문이 닫힌다. 3백만년 전 에르제스(Erciyes) 산의 화산폭발로 쌓인 화산재가 굳어 잿빛 응회암이 되었다. 수차례 지각변동을 거치면서 그 후 수십만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비와 바람에 쓸려 나가고 버섯이나 첨탑같은 모습의 기괴한 바위만 남았다. 이국적이다 못해 이질적인 풍경 덕분에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장소가 되었고 스머프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카파도키아(Cappadocia)(이미지출처 : Pixabay)

 기원전 18세기에 히타이트인들이 정착한 이후,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차례로 이곳을 점령했다. 1세기 전반, 로마 제국은 카파도키아 지역을 수중에 넣고 페르시아와의 국경선으로 정했다. 2세기 후반에는 기독교도들이 포교를 위해 이 곳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307~337년 재위)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카파도키아는 더 많은 기독교도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중간 거점으로 동양과 서양을 잇는 중요한 교역로였다. 로마시대 이래 탄압을 피해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몰려와 살았는데 4세기부터 11세기까지 기독교가 번성했다. 지금 남아 있는 대부분의 암굴 수도원과 성당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응회암은 상당히 부드러워서 날카로운 돌만으로도 절벽을 뚫어 집을 지을 수 있다. 탄압을 피해 건너온 기독교인들은 눈에 띄지 않는 암벽과 바위 계곡 사이를 파고 수도원과 성당, 집을 짓고 지하도시까지 건설했다. 지하도시에는 미로같은 통로를 따라 환기용 배기구와 저수조, 식량 저장고 등 인간이 장기간 생존할 수 있는 각종 시설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암굴 내부에 다양한 벽화들을 남겨 놓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종교 벽화의 대부분은 비잔틴 제국(9세기 후반 ~ 13세기) 시대에 그려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남긴 유적은 괴레메 계곡을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다. 10세기 무렵에는 동굴 속에 건설된 성당과 수도원의 수가 360개를 넘었으며, 11세기에는 인구가 7만에 육박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Cappadocia)(이미지출처 : Pixabay)

 괴레메 계곡 입구 바로 앞에는 카파도키아 최대 규모의 성당인 토칼르 키르셰히르(바르크 성당)가 있다. 입구 가까운 쪽에 있는 것이 구성당, 안쪽에 있는 것이 신성당이다. 신성당은 세 개의 예배실로 나눠져 있으며 구성당과 신성당의 벽면에는 그리스도의 일생과 성인들을 소재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구성당의 벽화는 10세기 전반에, 신성당의 벽화는 10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이다. 카파도키아의 벽화들은 붉은 안료를 사용해서 바위 표면에 기하학적인 문양이나 십자가를 그린 후 그 위에 도료를 덧칠하고 다시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링고의 성당'이라 불리는 엘마르 키르셰히르에는 구약성서 속에 등장하는 장면을 묘사한 벽화가 있으며 둥근 천장에는 전능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성당의 바로 뒤에는 '성녀 바르바라의 성당'이라 불리는 바르바라 키르셰히르가 있다. 성당 내부에는 16세에 순교한 성녀 바르바라 상이 있으며, 벽면에는 성 게오르기우스와 성 테오도로스가 용과 싸우는 모습을 형상화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외에도 밖에서 빛이 새들어오지 않도록 설계한 '암흑의 성당' 카란르크 키르셰히르,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불리는 메리에 마나 키르셰히르 등 제각각 특징을 가진 성당들이 많이 있다.

 통풍과 채광을 위한 구멍, 입구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장식이 없어 외부에서 볼 때는 인간의 거주 흔적을 찾기 어렵다. 내부로 들어서면 깎고 다듬은 공간 안에 프레스코 벽화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암굴의 특징 덕분에 프레스코화들이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카파도키아(Cappadocia)(이미지출처 : Pixabay)

 11세기 후반에는 아나톨리아 일대가 터키 셀주크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카파도키아도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들이 서로 평화적으로 공존했다. 1453년,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멸망하고 이 지역이 이슬람 세력권이 되었지만 기독교도들은 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근근히 신앙을 이어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카파도키아는 괴레메 계곡을 중심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