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에 관하여
1. 공룡의 최초 발견
공룡의 골격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7세기 말의 일이었다. 1677년, 영국의 박물학자인 로버트 플럿은 <옥스퍼드셔의 자연사>에서 화석화된 대형 대퇴골의 아래 부분으로 판명된 뼈를 설명하고 그림으로 소개했다. 그는 당초 이것을 코끼리의 뼈로 생각했으며 나중에는 거인의 뼈로 해석했다. 이 화석은 분실되었지만 대형 육식 공룡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8세기 후반에는 노르망디 해안에 썰물 때 드러나는 지층에서 진기한 화석이 발견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 북부의 항만도시인 르 아브르의 박물학자이자 성직자인 자크 프랑수아 디크마르는 여러 지역에서 채집해 모은 화석의 표본을 관찰하여 각 조각을 싸고 있는 물질은 중심부를 구성하는 물질과 다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뼈였다"고 기록해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 주었다. 1776년, 그는 채집한 화석을 <물리학 잡지>에 소개했는데, 그는 뼈를 단편적이지만 그림으로 나타냈다. 대부분은 플레시오사우루스나 이크티오사우루스, 악어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세밀하게 묘사된 대형 대퇴골은 공룡의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조르주 퀴비에는 파리에서 해부학을 강의하기 전인 1788년부터 1795년까지 어느 백작의 집에서 가정교사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노르망디 해안을 자주 찾아가 해양 생물을 연구했으나 척추동물에는 흥미가 없어 뼈 화석을 채집하지 않았다. 그가 1800년 학술논문에서 언급한 중생대 파충류의 척추골 화석은 바슐레가 채집한 것이며 그가 죽은 후 파리 자연사 박물관에 기증한 수집품 중에 들어 있던 것이었다. 1808년 퀴비에는 이 척추골을 두 종류의 신종 악어의 것이라고 소개하고, 해부학적으로 특이한 형태를 보이는 것에 주목했다. 확실히 이들 화석의 일부는 악어의 것이었으나 육식 공룡의 골격도 있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예부터 뼈 화석이 발견되었으나 믿을 만한 기록은 18세기에 와서야 등장한다. 1787년 미국의 과학자인 카스퍼 위스터와 티모시 매틀랙이 뉴 저지 주에서 '거인의 골격'을 발견하여 필라델피아 미국 철학회에 보고했다. 또한 1806년에는 미주리강(미시시피강) 상류를 탐험한 윌리엄 클라크가 몬태나주의 옐로스톤 강 언덕에서 거대한 '물고기의 늑골'을 발견했다고 탐험일지에 기록했다. 현재 이 두 지역이 공룡의 골격 화석 산지로 유명한 것으로 보아 이 뼈는 공룡의 골격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많은 공룡(혹은 추정되는)에 관한 보고가 있었지만 공룡을 유명하게 만들어 주었고 또 확실하게 공룡의 뼈로 인정되고 있는 발견은 1822년에 우연히 발생한다. 그 해 봄, 영국의 의사 맨텔은 부인과 함께 환자의 왕진에 나섰다. 맨텔이 진찰을 하는 동안 산책을 하고 있던 부인은 길가 자갈 속에서 무엇인가 빛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이상한 모양을 한 이빨 화석이었다. 아마추어 고생물학자였던 그는 이것이 매우 오래된 이빨 화석이지만 어느 생물의 이빨과도 닮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러나 런던 지질학회의 유명한 과학자들은 이 화석을 여전히 어느 물고기나 포유류의 것으로 생각했다.
맨텔은 서신 교환을 하고 있던 비교 해부학의 권위자인 프랑스의 퀴비에에게 감정을 부탁했다. 퀴비에는 그것이 파충류의 것으로 보이지만 육식의 것은 아니다(당시 알려진 파충류는 모두 육식이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지의 초식 파충류의 존재가 여기에서 시사된 것이었다. 맨텔은 이 이빨이 이구아나의 것과 닮았다는 사실을 알고 1825년에 영국 학사원 회보에 <서섹스 주 딜게이트 숲의 사암에서 최근 발견된 화석 파충류 이구아노돈에 관한 소개>라는 논문을 실었다. 맨텔은 그 이빨의 주인공이 현재의 큰도마뱀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했다.
1834년에는 이구아노돈의 골격 일부가 발견되었다. 맨텔은 이 뼈를 입수하여 연구를 계속하였다. 이 무렵 그가 작성한 골격 복원도는 큰도마뱀을 바탕으로 그려졌고, 코 위에는 코뿔소의 뿔과 같은 끝이 뾰족한 엄지 모양의 돌기가 그려져 있었다. 최초의 복원 모형은 1854년 영국의 비교 해부학자 오언 교수의 지도로 만들어졌다. 이 때도 이구아노돈은 코 위에 뿔이 있는 네발 동물로 되어 있었다.
이구아노돈의 모습이 정확하게 복원된 것은 1878년 벨기에의 벨니사르 탄광의 갱 안에서 완전한 이구아노돈의 골격이 발굴되고 나서이다. 이 때 약 40개나 되는 골격이 발견되었고, 이 발견으로 정확한 복원이 가능했다. 뿔로 생각되던 것은 앞발의 엄지 발가락이었고 주로 두 다리로 서 있는 모습이었음이 밝혀졌다. 발바닥 화석을 통하여 가끔씩 네발로 보행했던 일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구아노돈의 이빨 화석은 사람의 흥미를 공룡이라는 미지의 생물로 돌리게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그 후의 공룡학 발전으로 이어졌다.
2. 무서운 도마뱀이라는 이름을 얻다
이구아노돈이 학계에 받아들여진 후, 16년 간 9종류의 중생대 대형 육상 파충류가 확인되었고 학명이 부여되었다. 당시 영국의 여러 섬에서 파충류 화석을 조사하던 리처드 오언은 이 동물들이 거대한 파충류가 아니라 별도의 동물군을 형성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영국의 해부학자로는 일인자였던 오언은 이들 멸종된 동물의 뼈와 현생 파충류의 뼈가 많은 점에서 해부학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841년, 플리무스에서 개최된 영국 과학진흥협회 연례 총회 석상에서 오언은 중생대의 이 동물 이름을 제안했다. 오언은 그리스어로 데이노스(Deinos, 공포의)와 사우로스(Sauros, 도마뱀)를 합성하여 중생대의 대형 육상 파충류를 "디노사우리아(Dinosauria, 공룡목)"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그 다음 해 회보에 발표했다.
3. 용반목과 조반목의 차이
공룡은 분류학적으로 "파충강 쌍궁(雙弓) 아강 주룡(主龍) 하강"에 포함되는 5목 중, 용반목과 조반목에 속하는 동물의 일반적인 총칭이다. 파충류는 네 아강(亞綱)으로 나뉘는데 이 중에서 쌍궁 아강은 두개골의 눈의 뒤쪽에 측두와라 불리는 개구부를 두 개 가지고 있다. 쌍궁 아강 중 주룡류에는 뱀, 도마뱀, 옛도마뱀 등 다른 쌍궁 아궁과는 달리, 눈 앞쪽에도 다른 개구부가 있었다.
흔히 공룡이라 하면 익룡이나 어룡, 수장룡을 모두 포함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넓은 의미로 공룡의 범주로 포함시킬 수도 있겠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공룡은 육지에서 생활한 용반목과 조반목만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용반목(龍盤目 : Saurischia)과 조반목(鳥盤目 : Ornithischia)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둘은 골반의 차이로 분류된다. 용반목은 도마뱀의 골반을 닮은 것으로 장골(腸骨), 치골(恥骨), 좌골(座骨)이 각기 세 방향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조반목은 새의 골반을 닮았는데 치골이 좌골에 평행하며 뒤쪽을 향하고 있다.
공룡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사지의 구조이다. 다리가 몸통 바로 밑에 붙어 있는 직립형으로 이것은 도마뱀과 같은 파충류와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걸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날날의 도마뱀은 모두 다리가 몸통 옆에 붙어있는 반직립형이다. 공룡의 다리 구조는 도마뱀보다는 오히려 포유류나 조류를 닮았다. 현재 존재하는 파충류보다 뼈의 성장이 빠르고 하버스관(뼈에 혈액을 운반)의 밀도가 높으며 골세포의 크기가 포유류의 것과 유사하다. 또, 경골(정강이뼈)과 대퇴골(넓적다리뼈)의 비례가 크다는 점, 포식자(육식공룡)와 피식자(초식공룡)의 비례가 낮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독특한 특징을 가진다. 공룡이 파충류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현재의 파충류와는 전혀 다른 생물이었던 것 같다.
참고 자료 : Newton Highlight - 공룡연대기(1996년, 계몽사, 12-13, 18-19)
공룡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1995년, 장 기 미샤르 저/양승영 역, 시공사, 24-29, 30-31)